나의 방/조용히 음미

할머니께 배운 행복

더 창공 2009. 8. 18. 10:14

할머니께 배운 행복 - 서수남 -

 

 

40년 넘게 연예계에 종사하다 보니 인기와 함께 슬럼프도 있었습니다. 방송에 계속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새것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지요. 새로운 게 모두 좋은 건 아니지만 새것은 오래된 것보다 관심과 선택을 많이 받습니다. 그건 기억할 수 없는 대세지요.

 

나는 오래된 연예인입니다. 나를 오랫동안 보아 온 사람들 중에는 이제 싫증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신인 가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등을 토닥이며 격려해 주고 싶지만 늙은 가수가 열심히 뛰는 모습은 측은해 보입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느 날 매니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방송에 너무 의존하지 마시고 인터넷 공간에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 보세요. 젊은 세대는 선생님을 모를 수도 있지만,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에게라도 선생님을 보여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 ‘서수남 My Life'라는 블로그를 마련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날이 갈수록 방문객이 늘고 많은 팬도 만나 보람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어떤 사진을 찍고 어떤 내용을 담을까 고민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일한다는 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그렇게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변화했습니다.

 

내 블로그에는 93세의 김정연 할머니의 사연이 올려져 있습니다. 개성에서 결혼해 아들을 낳고 살다가 한국전쟁 때 이산가족이 되어 평생을 혼자 살아오신 분입니다. 금촌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2,300만 원을 사후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자로서 혼자 살며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학비도 대 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늘 도움을 주며 살아오셨습니다. 비록 노점에서 장사를 하시지만 할머니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얼굴 들기가 부끄러웠습니다. 돈이 많아야 된다고, 이름과 명예를 남겨야 된다고 정신없이 살아온 욕심 많은 내 모습이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결코 돈과 명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베풀며 느끼는 기쁨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가난하지만 바르게 살다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건강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