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공감

따듯한 동전

더 창공 2010. 1. 8. 10:38

따듯한 동전

 

몇 년째 이렇다 할 직장이 없는 나는 주머니가 늘 가벼웠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천 몇 백 원 정도의 푼돈이 고작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던 그 날 역시 내 바지 주머니에서는 몇

개의 동전만 딸그락거렸습니다.

 

나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무심결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동화 속 공주처럼 흰 드레스에 색색의 머리핀을 꽂은 대여섯 살

가량의 예쁜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지하철 안을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아이의 손에는 자그마한 바구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곱게 차려 입은 그 소녀는 앵벌 이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군거리고, 어떤 사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구니

에 동전을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소녀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냥 못 본체

외면해버렸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남을 돕겠다고?.’

 

어린 소녀의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변변한

지갑도 없이 주머니 속 동전만 만지작거리는 내 형편이 더

기막혔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눈먼 앵벌 이 할머니 한 분이 절룩거리며

걸어오시다가, 공교롭게도 소녀와 부딪쳤습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의 바구니 속 동전이 바닥으로 쏟아져 떼구루루

굴러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놀란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느라 정신없이 움직였고,

하나하나 주워 할머니의 바구니에 고스란히 담아 주었습니다.

 

“아이고, 뉘신지 몰라도 고마워요”.

 

어떤 고마운 이가 동전을 주워 준 모양이라고 생각했는지,

할머니는 엉뚱한 곳에다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몇 초가 지났을까, 소녀가 갑자기 할머니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바구니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할머니

바구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녀의 바구니에 동전 하나 선뜻 넣어 주지 못한

나의 옹졸함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

나는 소녀의 마음을 닮은 동글동글한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내

쪽으로 다가온 할머니의 바구니에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