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그릇을 닦으며

더 창공 2010. 12. 14. 13:58

그릇을 닦으며

 

오늘 독서의 말씀은 스바니야 예언서의 3,1-2 말씀입니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채 희동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접하게 됩니다. 나름대로는 2010년을 마무리 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 하면서 내 뒤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 있어 소개 하려 합니다.

 

그릇을 닦으며 - 윤미라

 

어머니

뚝배기의 속 끊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 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 주세요.

 

어쩌면 사람의 관계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일보다는 나의 뒤와 너의 앞이 서로 포개져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머물던 자리에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고, 네가 서 있던 자리에 다시 내가 서게 되는 것, 그래서 앞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에게 뒷모습만을 보여 주셨습니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걸래 질 하고, 물 긷고, 밭 매고.......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뒷모습이셨습니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머문 그 자리에서 오늘은 내가 살고 우리가족이 삽니다. 내 어머니가 아름다운 것은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 때문입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신 새벽에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허름한 뒷모습으로 거리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남모르게 가난한 이들을 돕는 손길에는 요사스러운 앞모습이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없는 뒷모습만 있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앞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돈을 들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늘지고 병들고 가난한 뒷모습을 닦기 위해 교회의 얼굴이 뭉개지고 더러워져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질 수 있고, 그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앞모습), 네 이웃을 사랑하라(뒷모습)"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이처럼 앞모습과 뒷모습이 서로 만나는 것이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온통 자신의 앞모습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시인의 노래처럼 내 뒷면을 닦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존재가 빈 그릇 이라면 내 뒷면을 잘 닦는 일이 곧 내 마음을 닦는 일이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와 내 존재가 온전히 포개질 수 있습니다. 추어지는 날씨 속에서도 변함없이 대림초엔 하나의 촛불이 더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사는 아름다움을 실천 하는 단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아 멘 -

2010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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