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공감

후원자의 충고

더 창공 2012. 2. 15. 13:28

후원자의 충고

 

어느 시골의 고등학교 졸업반인 한 학생이 있었다.

대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꿈인

그 학생은 3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부모의 경제 사정으로 볼 때 대도시에 있는 대학,

아니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와 책값 등을

대주겠다는 후원자가 한 사람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학생은 방황의 사슬을 끊고 다시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듬해 그 학생은 그렇게도 원하던 대도시의 대학교에 합격했다.

학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서 방황하던

고등학교 졸업반 때와 비교하면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대학생이 된 그 학생은 늠름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또래의 다른 신입생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많았다.

청년은 지도교수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그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님께!

각별한 관심 속에 저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후원자님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청년은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렇지만 후원자의 무거운 짐을 덜어줄 만큼 좋은 성적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면

그만큼 후원자에게 보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는 청년에게 분명히 부모 이상이었다.

학교 앞 육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어떻게 알았는지 지도교수를 통해 치료비까지 보내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님께!

후원자님은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지 않는군요.

얼굴은 보여줄 수 없어도 편지 정도는 보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후원자님의 편지가 왔는지 편지함을 세 번이나 확인했어요.

아마 내일도 그럴 거예요.

야속하게도 후원자는 답장을 한 번도 보내주지 않았다.

청년은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듯 속마음도 적어 보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후원자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채 학비와 책값,

용돈 등을 빠뜨리지 않고 보내주었다.

청년은 처음에 그 후원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데,

2학년이 되고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럴수록 후원자를 더 존경하게 되었고,

그런 후원자 때문에 대학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나갔다.

그러나 4학년 2학기가 되면서 청년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졸업 후 진로를 놓고 심한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서 방황했는데,

막상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되자 졸업 후의 일자리 걱정 때문에

또 다른 방황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전공을 살린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으려고도 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청년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님께!

후원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해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유혹의 손짓은 너무 달콤하더군요.

저의 장래를 위해 충고의 글을 한 줄이라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후 후원자로부터 뜻밖의 답장이 날아왔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면 나를 찾아오세요.

내가 있는 곳은 ○ ○입니다.

기숙사를 나선 청년은 시내의 어느 빌딩 앞에서 서성거렸다.

답장에 씌어 있는 주소를 확인하며 청년은

빌딩 근처의 키 작은 조립식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충격을 받고 한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리던 청년은

구두병원이라고 씌어있는 키 작은 조립식 건물로 들어갔다.

일흔은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이 구두를 닦고 있었다.

이마에는 구릿빛 주름살이 깊은 밭고랑을 새겨놓고 있었다.

손등에는 구두를 수선하다가 생긴듯한 상처 자국이 무수했다.

구두약에 절은 듯 손톱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청년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저, 혹시······

구두닦이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젊은이, 어서 와요. 꽤 놀란 모양이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고?"

"젊은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네.

내가 자네처럼 젊었을 때 깨달았다면 더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누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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