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공감

어머니의 선종

더 창공 2012. 10. 19. 15:41

어머니의 선종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대구 교구에 있을 때였다.

주교관 뒤의 낡은 집을 구해 수리해서 어머니를 모셔다 놨다.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고

 

함께 식사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김수환 주교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언제나 밝은 얼굴로 웃으며

 

좋은 말씀만 드렸다.

 

“우리 막내, 스테파노 신부,

 

이 에미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시게.

나는 이제 하느님께 갈 준비가 되어 있다네.“

 

“나는 사순절 둘째 영복(영광)날 세상을 뜨고 싶다네.

매일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니 하느님이 들어주실 걸세.“

 

수환이도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소원이 기도대로 이루어졌다.

 

바로 사순절 둘째 날,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내려 가지고 성당으로 갔다.

성한 사람에게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중풍이 들은 어머니는

한 발작씩 걸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힘겹게 바친 것이다.

 

그리고 고해신부에게 평생 죄를 고백하는 총고해를 했다.

그런 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신부님, 어머니께서…, 빨리 오셔야할 것 같습니다.”

교구청의 수환이는 어머니의 위급연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눈을 감고 있던 어머니가 힘겹게 눈을 떴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어머니가 숨을 거뒀을까 걱정했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막내아들 스테파노의 손을 꼭 잡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감았다.

순간 수환 신부는 화살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어머니를 인도하소서. 아멘!”

 

홀로 7남매를 키우시느라 현실에서는 고생뿐이셨던 어머니,

그러나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지 않으셨던 어머니.

내 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제가 되었지만,

신앙의 깊이는 어머니의 만분의 일도 안 된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아이처럼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어머니께서 떠나셨으니 이제 진정 나는 고아가 되었구나!’

 

그때 수환이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는데도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는 그에게 크고 강한 기둥이었다.

 

김원식 著 -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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