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산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산
우리 시대의 성자(聖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이 열풍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 신드롬의 기미는 이미 선종 후 고인의 빈소로 이어진 40만 명이 넘는 추도 대열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 가는 길에 각막을 기증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전 사회적인 신드롬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장기기증 신청자도 급증해 장례 기간을 포함해 일주일 동안에만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장기기증을 희망한 이가 15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김 추기경은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교회는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함을, 어떤 불의에도 용감해야 함을, 나눔이 곧 사랑이고 행복임을 자신의 삶과 실천을 통해 우리에게 남겼다. 그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으니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사는 삶을 살았다. 당연히 날마다의 기도 속에서 자신을 비우고 소외된 이웃을 채웠을 것이다. 그런 삶이였기에 그 울림은 무엇보다도 컸다. 이러한 김 추기경의 삶을 되새긴 전국적인 추모 열기는 이제 교회에 몇 가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우선 고인을 추모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 위대한 목자가 헌신과 희생의 삶을 통해 보여준 그리스도 정신을 전 국민적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김 추기경의 삶과 정신이 교회뿐 아니라 국민 전반에 끼친 영향을 감안할 때 고인이 생전에 교회와 사회 곳곳에 남긴 다양한 업적들을 교회 차원에서뿐 아니라 대사회적으로도 조명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 차원에서는 김 추기경이 남긴 다양한 유산을 복음화의 밑거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기경 선종 후 일고 있는 신드롬을 일시적인 바람이나 제한적인 효과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교회가 새롭게 쇄신할 수 있는 소중한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김 추기경 선종을 교회와 신자 개개인이 스스로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아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짐과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성찰과 회개를 요청한다. 김 추기경처럼 낮추고 비워서 참으로 겸손해질 때, 비로소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유산을 그저 말이 아닌 가슴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고인은 하느님 곁으로 기쁘게 떠나고, 다시 우리 곁에서 살아날 것이다. -가톨릭신문 사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고자 참회하고 보속하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순시기 동안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는 것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 동안 극기와 절제의 삶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특별히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함께해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올해 사순시기 담화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단식이다. 교황은 담화에서 "단식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고치는 치유법으로, 우리가 단식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내면에서 체험하는 가장 커다란 굶주림, 곧 하느님을 향한 굶주림을 채워주신다"고 단식의 의미를 밝혔다. 아울러 기도와 거룩한 독서, 고해성사에 힘쓰고 주일미사에 더욱 열심히 참례함으로써 사순시기의 참된 정신을 살릴 것을 촉구했다. 교황께서 올해 사순시기를 뜻있게 보내는 방법으로 제시한 단식을 실천해볼 것을 권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오늘날 단식은 영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육체를 낫게 하는 치료기능만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단식이 육체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식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죄를 멀리하게 하는 영혼의 치료제이다. 교회는 단식하는 동안 모아 놓은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다. 나 자신, 그리고 이웃이 하느님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단식을 실천하는 사순시기가 되기를 바란다. -평화신문 사설-
오늘 복음에서처럼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다.” 진리는 주님께만 유보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정확한 이론도 그분 앞에선 ‘참고 사항’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진정 ‘아는 사람’은 고개를 숙입니다. 낮추어야 할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스승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인지천산 불여 천지일산’(人之千算不如天之一算) 사람이 ‘천 번’을 계산해도 하늘이 ‘한 번’ 계산함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하늘이 한 번 봐주는 것에 못 미친다는 말과 같습니다. 복음 말씀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