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말씀전례의 구성요소

더 창공 2009. 2. 14. 16:34

I. 말씀전례의 구성요소

1.1. 하느님의 말씀선포(1): 독서와 복음

1.1.1. 독서와 복음의 배열

시나고가 전례에서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었고, 율법서는 더 중요하게 여겨져 “연속독서”(lectio continua)의 방식으로 읽었고, 예언서는 자유롭게 선택한 단락을 읽었다. 이러한 독서는 공동체의 기도 안에 포함되었으며, 이 시나고가 집회는 강복으로 끝맺었다.3) 유스티누스의 호교론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4) “시나고가의 안식일 전례에서 나타나는 말씀전례는 예비자 미사(말씀전례)의 토대가 되었다.”5)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가 시나고가 전례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물론 2-4세기 이후 많은 동방의 증거를 보면, 독서의 배열뿐만 아니라 기도문에 있어서도, 시나고가 전례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주는 말씀전례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교회가 유다이즘에서 분리된 이후 전승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유다이즘과 분명히 오랫동안 긴밀하고 효과적인 접촉을 유지한 시리아 전례에서 그러하다.”6)


초기 교회문헌인 ‘사도헌장’(Constitutions apostoliques)은 복음을 포함 모두 5개의 독서(율법서, 예언서, 서간, 사도행전, 복음)를 읽었다고 전한다.7) 4세기 안티오키아에서는 첫째 독서를 율법서와 예언서 가운데서, 둘째 독서로 서간이나 사도행전에서, 끝으로 복음서를 읽어 모두 3개의 독서를 읽었다. 특별전례시기에는 구약성서를 삼가거나 완전히 생략했는데, 신약의 봉독을 통하여 약속의 성취 안에 나타난 구원의 신비를 더욱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곱트 전례에서는 특별 전례시기에 바오로 서간, 가톨릭 서간, 사도행전, 복음의 4개 독서를 고정적으로 시행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향이 전체 전례주년에 영향을 주게 되어, 비잔틴 전례는 7세기부터 사도행전과 복음의 2개 독서를 오늘날까지 시행하고 있다. 한편 이런 경향은 로마 전례에도 영향을 주어, 초기에 구약, 신약, 복음의 3개 독서였던 것이, 서간과 복음의 2개 독서로 줄어들게 되었다.8)


초기 교회부터 시행되어 온 “연속독서”(lectio continua)의 흐름에서, 에제리아의 “예루살렘 순례기”가 증언하는 것처럼, 더 밀접하게 관련된 독서를 선택하였던 큰 축일들은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독서의 선택을 “주제별 독서”라고 부른다. 서방에서 “연속독서”의 원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개정에 이르기까지 겨우 최소한의 정도로 지켜지는 것에 불과했다면, 동방교회들은 이 원칙을 더욱 준수하였고, 독서의 선택은 본문의 구조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비잔틴 교회는 성령강림 후 17주간 동안 마태오 복음을, 그 후 16주간 동안 루가를 약간의 마르코와 요한복음의 도움을 받아 읽었다. 중세에 로마전례의 독서배열은 완전히 딴 모습이 되었다. 거의 매일 찾아오는 많은 주님의 축일과 성인들의 축일로, 로마 전례는 연속독서를 완전히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9)


다행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말씀의 더욱 풍성한 식탁을 신자들에게 마련하여 주도록 성서의 보고를 더 활짝 열어, 일정한 햇수 안에 성서의 더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봉독되어야 한다.”(전례헌장 51항)고 천명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독서배열이 마련되어, 1981년 “미사독서”(Ordo Lectionum missae) 제2판이 출판되었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옛 전통에 따라 3개의 독서(구약, 신약, 복음)가 마련되었다. 주일 독서의 배열은 3년 주기를 따라 매년 공관복음 중에 하나(가해: 마태오, 나해: 마르코, 다해: 루가)를 읽도록 하였고, 요한복음은 매년 특수전례시기에 읽도록 하였다. 전례주년의 특수전례시기(사순, 부활, 대림)에는 주제에 따라 “주제별 독서”를 읽도록 하였고, 연중시기 주일은 “연속독서”가 되도록 하였다.


주일과 대축일에 특히 구약독서와 복음의 긴밀한 관계에 특별한 주의를 두었다. 그래서 ① 복음에 인용된 구약본문이 독서에서 미리 읽도록 하거나, ② 구약과 신약의 분명한 대조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③ 구원역사의 연속성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며, ④ 약속과 성취라는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10)


평일미사의 경우에 새 독서배열은 2개 독서를 2년 주기(홀수 해, 짝수 해)로 마련하였고(단, 복음은 매년 같은 것을 공유함), 특수전례시기는 2개 독서를 1년 주기로 매년 반복하게 하였다. 성인들의 기념미사와 특수예식(성사 및 준성사)미사, 기원미사, 다양한 환경의 미사를 위한 독서들도 마련하였다. 비록 주일과 축일에는 몹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평일에는 성인들의 기념미사나 다양한 환경을 위한 미사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참조. 미사전례성서).


1.1.2. 비복음독서

말씀전례에서 봉독되는 비복음독서에 대하여, 1981년 ‘독서지침’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독서지침 14항] 봉독자들이 품위 있는 선포 방법, 곧 분명하고 큰 음성으로 선포할 때 하느님 말씀을 회중에게 잘 전달하는데 기여한다. 합법적으로 승인된 독서집의 독서는 각국 언어로 노래할 수 있으나 다만 노래가 언어를 압도하지 않고, 합당하게 부각시켜 주는 조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라틴어로 선포하는 경우에는 미사곡(Ordo cantus Missae)에 제시된 방식을 참고할 것이다.


[독서지침 18항] 독서를 마치면서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는 독서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노래로 할 수 있고 모든 참석자가 응답한다. 신앙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은 회중이 이런 방법으로 그 말씀에 공경심을 드러내게 된다.


독서를 통하여 회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식탁이 마련되고 성서의 보고가 열린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독서와 화답시편을 성서가 아닌 다른 본문으로 대체할 수 없다(참조. 미사지침 57항; 독서지침 12항).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거행에서 독서는 항상 독서대에서 수행하여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58항; 독서지침 16항). 독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주시며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신다(참조. 미사지침 55항). 따라서 독서는 잘 준비한 독서자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마음으로 봉독하며, 백성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29항).11) 전통에 따라 독서의 임무는 주례자가 아니라 봉사자가 수행한다. 그러나 다른 적합한 봉사자가 없을 때는 집전 사제 자신이 모든 독서들을 낭송한다(참조. 미사지침 59항). 독서자가 독서를 노래로 봉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입니다.”와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독서자와 회중이 노래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곡이 마련되고 노래된다면 회중의 능동적 참여와 해당 전례의 장엄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참조. 독서지침 18항).


1.1.3. 복음독서

말씀전례에서 봉독되는 복음독서에 대하여, 2002년 ‘미사지침’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0항] 복음독서는 말씀 전례의 정점이다. 전례 자체는 다른 독서에 비해 복음에 특별한 영예를 드리는 표시로 최대의 경의를 표현하라고 가르친다. 봉사자 편에서는, 복음 선포를 위해 특별한 품위의 봉사자가 규정되며, 그는 선포에 앞서 강복을 받거나 기도를 바침으로 준비한다. 한편, 신자들 편에서는 환호를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현존해 계시며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한다. 복음을 들을 때는 서 있는다. 그리고 복음집 자체에도 경의를 표시한다.


초기 교회 때부터, 주의 깊게 듣고 침묵을 지키라는 초대는 이미 1독서에 앞서 말하여졌지만, 몇몇 교회에서는, 복음 선포 전에 더 강조하였다: “조용히 하시오.”(Πρʹοσχωμεν). 때로 “서 있으시오.”(Όρθοί)라는 권고가 덧붙여졌다. 복음을 경청하기 위한 이러한 태도는 깨어있음을 표시하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존재라는 신자들의 조건을 표시하며, 모든 전례에서 발견된다.12)


복음봉독이 말씀전례의 정점이며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점은, 비복음독서의 봉독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여러 가지 특별한 요소들이 복음독서를 동반하면서 표현하는 장엄함에 미루어 알 수 있다. ① 복음봉독의 직무자는 부제 혹은 사제이다. ② (주례자가 향로의 준비를 마치면) 복음선포자는 기도를 바치며 스스로를 준비하거나(사제), 특별한 축복을 청하며 준비한다(부제). ③ 독서대까지 (초와 향로를 든) 봉사자를 앞세우고 행렬을 하고, 때에 따라 복음서를 높이 들고 행렬한다. ④ 복음선포자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하고 회중은 응답한다. ⑤ 이어서 “... 복음입니다.” 하면 “주님 영광받으소서”라고 응답한다. ⑥ 복음선포자는 복음서와 자신에게 십자표시를 하고 회중도 함께 십자표시를 한다. ⑦ 성대한 축제일에는 복음서에 분향한다. ⑧ 복음선포 동안 회중은 서서 경청한다. 경우에 따라 주교는 목장을 들고 서서 경청한다. ⑨ 복음선포 후에 “주님의 말씀입니다.”하면 회중은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응답한다. (10) 복음선포자는 작은 소리로 “이 복음말씀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한다. (11) 복음선포자는 복음서에 입맞추거나 경의를 표한다. 경우에 따라 부제는 자신의 입맞춤을 생략하고 주례자인 주교에게 복음서를 가져다 드리면, 주교가 입 맞추고 복음서로 회중에게 강복한다.13)


1.2. 하느님의 말씀선포(2): 강론

강론이 설교와 구별되는 것은, 강론이 전례와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었고, 또 봉독된 말씀 안에서 그리고 그 말씀에서 선포되는 본문과 표지 안에서 신앙에 감도된 신앙행위들이 삶에서 풍성히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그 고유한 의미에서, 강론과 다르게, 선교(missio)적인 설교로, 또한 가끔 전례와 연관을 가지기는 하지만, 주로 외교인들에게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설교하는 것이다. 내용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아도 강론과 설교는 서로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14)


거룩한 본문에 대한 설명인 강론(homilia)은, 말씀전례에서 가장 오래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미 유스티누스가 호교론을 집필한 2세기부터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었다.15) 교부들의 시대는 또한 위대한 강론의 시기여서 교황과 주교들의 강론집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원래 강론은 주교의 특별한 권한이었다. 그 후 주교의 주례 하에서 강론은 가끔 사제들에게 맡겨졌고, 4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제들의 자율적인 강론이 발전하게 되었다. 강론은 또한 드물게 부제들에게도 맡겨졌지만, 평신도에게 강론을 맡기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이러한 경우는 동방교회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16)


서방교회에서 똑같은 요구가 발생하였을 때, 주교들은 봉사자가 교부들의 강론을 읽도록 하였다. 카롤링 왕조 이후 시대에 교부들의 강론은 지방어로 번역되어 큰 소리로 혹은 조금 자유롭게 읽혀졌다. 좀 더 자유롭게 선포되고 또 전달되는 말씀의 봉사의 새로운 개화기가 중세초기 탁발수도회(프란치스꼬회, 도미니꼬회, 아우구스티노회 등) 설교가들의 활동으로 마련되었지만, 이것은 사실 강론이 아니라 교의적이고 윤리적인 설교라고 할 것이다. 라틴어가 아닌 지방어에 의한 독서와 복음의 반복, 설명, 공지사항, 기도와 노래 등으로 구성된 이 부분이 확대될수록, 이 부분은 미사전례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었다. 또한 중세 중엽이후 성당 중간부분에 조금 높은 단을 쌓고 설교단(pulpito)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강론과 희생제사가 분리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17)


강론이 미사 거행과 별개의 것으로 여겨진 또 다른 이유는 강론형식의 지나친 자유로움이다. 트렌토 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에 의해 재정립된 전례는 기도의 법이 믿음의 법이라는 원칙에 따라, 전례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강론은 본당신부가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강론은 뭔가 특별한 것으로 여겨져, 여기에서 강론을 성찬례와는 점점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18)


몇몇 시기에 강론을 중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는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된다. 더더군다나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에서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전례헌장 52항)고 선언한다.


1981년 ‘독서지침’은 강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독서지침 2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으로부터 특별히 강론을 말씀 전례의 일부분으로 강력하게 권장한다. 여러 문헌에서 강조된 바 강론은 전례주년을 따라 성서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삶의 규정들을 해설하는 것이다. 규정에 의하여 주례 사제가 미사를 거행하면서 강론을 하는 목적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가 성찬 전례와 함께 “구원역사에서 하느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 또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독서와 강론에서 선포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미사의 희생제를 통하여 실현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강론을 통하여 항상 현존하시며 활동(praesens semper adest et operatur)하신다. 한편 강론은 성서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 또는 다른 전례문을 설명함으로써, 신자공동체가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신앙으로 얻은 바를 삶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와 같은 활기찬 해설로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교회의 예식거행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론은 묵상의 열매이어야 하고, 잘 준비되며,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알아듣도록 할 것이다. 공동 집전에서는 주례나 혹 공동 집전자 중의 한사람이 강론을 하는 것이 규정이다.


또한 2002년 ‘미사지침’은 또한 강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29항] ... 하느님께서는 성서 독서를 통하여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누구나 그 말씀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보다 충만한 이해와 효과는 전례 행위의 한 부분인 살아 있는 해설인 강론에 의하여 촉진된다.


[미사지침 65항]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며 매우 권장된다. 그리스도교 삶을 양육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론은 성서 독서의 내용 또는 미사통상문이나 그날 미사의 고유 전례문의 본문에 대한 설명이어야 한다. 강론을 할 때는 거행하는 신비의 특성이나 청중의 특별한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미사지침 66항] 강론은 원칙적으로 주례 사제 자신이 한다. 공동 집전 사제 가운데 한 사람에게나 필요한 경우 부제에게 맡길 수 있지만, 평신도에게는 결코 맡길 수 없다.19) 특별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거행에 참여하고 있지만 공동 집전을 하지 않는 주교나 사제가 강론을 할 수 있다.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이 참석하는 모든 미사에서는 강론을 해야 하며 중대한 사유 없이 생략할 수 없다. 다른 날에도, 특히 대림시기, 사순시기, 파스카시기 평일 그리고 백성이 많이 참석하는 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좋다. 강론 다음에는 적절하게 짧은 침묵의 시간을 지킬 것이다.


이 두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는 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본성: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다. ② 필요성: 말씀의 보다 충만한 이해와 효과는 강론에 의하여 촉진된다. ③ 봉사자: 주례자 자신 혹은 다른 주교나 사제나 부제가 강론의 임무를 수행한다. ④ 시기: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이 참여하는 미사에서는 강론이 의무적이고, 대림, 사순, 파스카시기 평일과 회중이 많이 참석하는 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강론은 권고된다. ⑤ 내용: 강론은 전례주년을 따라 성서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미사통상문이나 고유 전례문에 대한 설명으로, 거행하는 신비의 특성을 고려하여,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정을 설명한다. ⑥ 목적: 강론은 말씀선포와 성찬례를 하느님의 놀라운 일 혹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되게 하고, 신자들은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게 도와주고, 신자들이 강론의 설명과 그 묵상을 통하여 신앙으로 얻은 바를 삶으로 표현하도록 그리스도교 삶을 양육한다. ⑦ 방법: 활기찬 해설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강론이 묵상의 열매가 되고, 잘 준비되며,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청중의 특별한 입장을 고려하여,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강론 내용을 잘 알아듣도록 행하여야 한다.


1.3. 전례회중의 화답(1): 침묵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30항)고 말함으로써 ‘침묵’(Silentium)을 능동적 참여를 이루는 여러 가지 필수적인 전례행위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미사지침’은 침묵을 ‘거행의 한 부분’이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미사 안에서 지켜져야 할 침묵의 순간과 성격에 대해서 말한다. “거룩한 침묵 또한 거행의 한 부분으로서 제 때에 지켜져야 한다. 침묵의 성격은 각 거행에서 그 침묵이 시행되는 순간에 따라 다르다. 참회 행위와 각 기도의 초대 다음의 침묵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고, 독서와 강론 후의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하는데 도움을 주며,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미사지침 45항) 그러면 말씀전례의 침묵부분에 대해 한정하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3.1. 말씀전례 전 침묵

말씀전례 전 침묵에 대해서 ‘미사지침’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독서지침’은 28항에서 “말씀전례를 시작하기 전에”(ante quam inchoetur ipsa verbi liturgia)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말씀전례 전 침묵은 이미 예로부터 로마전례를 제외한 모든 전례전통에서 발견되는 것이다.20) 한편, 로마전례에서는, 미사전례에서는 아니지만, 예비자 수련식 말씀전례(복음봉독)에서 부제가 “침묵하시오. 주의 깊게 들으시오!”(State cum silentio, audientes intente!)라고 말한 흔적이 발견된다.21) 이러한 말씀전례 전 침묵은 “말씀전례를 거행하면서 묵상을 촉진하도록”(미사지침 56항) 준비하는 것이며, “곧 시작될 거룩한 예식을 경건하게 거행하도록 마음을 준비하는”(미사지침 45항) 것이다.


1.3.2. 1독서 후, 2독서 후, 강론 후 침묵

2002년 ‘미사지침’은 1독서 후(56항, 128항), 2독서 후(56항, 130항), 강론 후(56항, 66항, 136항)에 “짧은 침묵의 순간이 적절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전례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침묵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실로 커다란 변화로, 이제 침묵은 전례거행의 한 부분이 되었다.22) 하느님의 말씀과 강론에 이어지는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미사지침 45항) “하느님의 백성은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침묵과 노래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미사지침 55항) “이 순간은 신자들이 성령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고 기도를 통하여 응답을 준비하게 한다.”(미사지침 56항) 말씀전례를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혹은 하강차원)와 그에 따른 인간의 ‘응답’(혹은 상승차원)으로 살펴볼 때, 침묵은 말씀에 대한 응답 즉, 침묵, 노래, 기도 중에 첫 번째 응답이며, 말씀 선포의 순간에 우리가 경청함으로 이미 드릴 수 있는 응답이다. 또한 이러한 침묵은 말씀전례의 먼 응답인 열매 맺기를 돕는다. 말씀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개인의 삶을 조명해 보고, 그 말씀에서 위로를 얻으며, 생활개선의 결심을 하고, 이웃사랑을 결심하는 것을 말씀전례의 열매 맺기라고 할 것이다. 결국 말씀전례의 침묵은 전례거행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래, 기도와 같은 응답뿐 아니라, 생활개선, 이웃사랑과 같은 먼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 전례거행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 침묵의 순간에 신자들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알아듣는다. 결론적으로, 말씀과 강론 후 침묵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도록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를 맡겨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1.3.3. 보편지향기도 중 침묵

2002년 ‘미사지침’은 “(신자들은 보편지향기도) 각 지향 후에 응답 형태의 기원을 함께 바치면서 또는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자신의 청원을 표현한다.”(71항)고 규정한다.


보편지향기도의 장엄한 형태는 지금도 로마미사전례서의 성금요일 예절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부제나 다른 적합한 이가 지향을 말하고, 모두가 서서 혹은 무릎을 꿇고 잠깐 침묵 중에 기도하고, 마지막에 사제가 청원의 내용을 기도로 바친 다음 회중의 ‘아멘’으로 마치게 된다. 이러한 형태는 이미 5세기 중엽에 확립된 것이다. 기도지향들은 청원기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때로 사제의 청원기도 없이 백성의 침묵기도와 함께 사용되었다.23) 말씀전례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보편지향기도에서 침묵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순간이다. 기도지향을 염두에 두고 기도하거나, 혹은 개인적인 청원을 드릴 수 있다. 이때의 침묵은 본기도 혹은 영성체 후 기도에서 사제의 “기도합시다.”라는 초대 이후에 모두가 함께 침묵 중에 기도하는 것과 동일하게 기도의 성격을 갖는다(미사지침 54항, 127항, 165항, 259항).


지금까지 말씀전례의 침묵부분에 대해 살펴보았다. 말씀전례 전 침묵은 말씀전례에서 묵상을 잘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고, 1독서 후, 2독서 후, 강론 후 침묵은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는 순간이며, 보편지향기도 중 침묵은 기도와 청원의 침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침묵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요구되는 전례거행의 한 부분이다(참조. 전례헌장 30항; 미사지침 45항). 이러한 침묵을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말씀과 하나가 되고 말씀을 바탕으로 노래와 기도의 응답을 드리게 되고(참조. 미사지침 55-56항), 성찬전례를 준비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미사 후 영적예배가 되는 삶의 응답도 가능하게 한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2031항).


1.4. 전례회중의 화답(2): 노래

이미 구약시대부터 악기 반주에 맞추어 불리어진 영감을 받은 시편의 가사와 다른 노래는 전례거행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새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계속 발전시켰다.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한 자리에 모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함께 노래하라고 권고한다(참조. 골로 3,16). “성시와 찬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 노래는 마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참조. 사도 2,46).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다.”24)라고 훌륭하게 표현하고, 또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25)라고 말한다.26)


노래와 음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요 기준에 따라 전례 행위와 더욱 밀접히 결합되면 될수록 더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 표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기준들은 ①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② 예정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회중 전원의 일치된 참여, ③ 전례거행의 장엄함이다. 이처럼 노래와 음악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고 하는 전례적 언어와 행위의 궁극 목적에 이바지한다.27)


노래와 음악의 중요성은 ‘전례헌장’이 온전한 한 개의 장을 할애할 정도이다.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28) 있으며 또한 “거룩한 교역자들이 참석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거룩한 예식들을 장엄하게 노래로 거행할 때에 그 전례 행위는 더욱 고귀한 형식을 갖춘다.”(전례헌장 113항)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백성의 특성과 전례회중의 능력을 고려하면서 미사거행에서 노래를 대단히 중요시해야 한다.”(미사지침 40항) “특히 주일과 의무 축일의 미사는 되도록 노래를 부르며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거행하는 것이 좋다.”29)(미사지침 115항)


또한 노래는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전례헌장’ 30항은 능동적 참여(actuosam participationem)에 대해 말하면서 이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populi acclamationes), 응답(responsiones), 시편 기도(psalmodia), 따름 노래(antiphona), 성가(cantica)와 함께 행동(actiones)이나 동작(gestus)과 자세(corporis habitus)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sacrum silentium)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여기에 제시된 아홉 가지 요소 중 행동이나 동작과 관련된 세 가지와 ‘침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노래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능동적 참여에 있어서 노래의 비중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말씀전례의 노래부분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자.


1.4.1. 화답송 또는 화답 시편30)

2세기 유스티누스(Iustinus)는 자신의 호교론(Apologia)에서 미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독서들 사이의 화답 시편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감성 안에서 시편이 누리는 중요성에 미루어, 또 유다인의 문화적 습관에 미루어 볼 때, 화답 시편의 존재는 매우 오랜 것이다.31) 이미 성 아우구스티누스(S. Augustinus)의 시대에 화답 시편은 말씀전례의 주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이미 들었고 또한 노래로 불러 응답한 시편”이라고 말한다.32)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강론에서 자주 화답 시편을 언급하고 때로 화답송을 강론의 중심 주제로 삼기도 하였다.33)


교황연대기(Liber Pontificalis)는, 로마전례에서 독서에 연결된 시편(화답송)에 관한 주도적 역할을 행한 인물로 교황 첼레스티누스(Caelestinus, 422-432)를 소개하고 있다.34) “(교황은) 희생제사를 봉헌하기 전에 다윗의 시편 150편을 모두 포함하는 후렴적 시편성가(psalmodia)를 노래하도록 결정하고, 성 바오로의 서간이나 거룩한 복음을 읽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편을 앞세우지 않도록 결정하였다.”35) 그 후 시편 한 편을 몇몇 소절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고, 화려한 가락이 붙여져 선창자에게 맡겨지면서, 회중의 참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36)


2002년 ‘미사지침’은 말씀전례에서 1독서 다음에 노래하게 되는 화답송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1항] 1독서 끝에는 화답 시편(psalmus responsorius)이 뒤따른다. 화답 시편은 말씀 전례의 본질적(integralis) 부분이며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전례적으로도 사목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화답 시편은 각 독서 내용에 적절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독서집(미사 전례 성서)에서 취한다. 화답 시편은, 적어도 백성이 맡는 후렴의 경우에는, 노래로 바치도록 되어 있다. 이때 시편 담당(psalmista) 또는 시편 선창(cantor psalmi)은 독서대나 다른 적당한 자리에서 시편구절을 노래하며 회중 전체는 앉아서 듣는다. 모두 함께 직접 시편을 노래하는 방식, 즉 후렴 없이 구절만을 노래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백성은 화답송을 바치는데 후렴을 노래함으로써 참여한다. 그러나 백성이 시편 화답을 더욱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그 독서에 지정된 시편 대신에 전례 시기나 성인 축일의 등급에 따라 선정된 시편을 화답 시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시편을 노래로 할 수 없으면 하느님 말씀의 묵상을 촉진하는데 적합한 방식으로 낭송한다. 독서집에 지정된 시편 대신 로마 화답송집(Graduali Romano)에서 취한 화답송(responsorium graduale)이나 단순 화답송집(Graduali simplici)에서 취한 화답 시편 또는 알렐루야 시편을 그 책들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다.


화답송은 말씀전례의 본질적(integralis) 부분이다. 주일이나 대축일에만 사용하는 신경(credo), 의무로 규정된 날이 두 번뿐인 부속가(sequentia) 혹은 노래로 바치지 않을 경우 생략해 버릴 수 있는 알렐루야/복음 전 노래와는 달리, 화답송은 주일, 대축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미사에서 항상 말씀전례의 구성요소가 되기 때문에 말씀전례의 본질적 부분이 된다(미사지침 61항; 독서지침 19항).


‘미사지침’ 61항과 ‘독서지침’ 20항에는 화답송을 노래하는 방법으로 ‘화답방식’(modus responsorialis: 선창자 등이 구절을 노래하고 회중이 후렴으로 응답하는 방식)과 ‘직접방식’(modus directus: 후렴 없이 한꺼번에 노래하는 방식)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37)


화답송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한다. 화답송이 어떤 방식으로 노래되던지, 회중은 후렴을 노래하면서도, 구절을 들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38) 전례거행 중에 묵상을 위한 진지함이 화답송으로부터 솟아난다.39) 이렇게 회중의 묵상을 촉진하는 화답송은 전례적으로도 사목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가진다(미사지침 61항). 화답송이 단순한 노래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앞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의 내용에 대해 묵상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40) 화답송을 노래할 수 없는 경우에도 하느님 말씀의 묵상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낭송해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61항).


통상적으로 독서집에 지정된 화답송은 1독서와 호응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공통, 특별예식미사, 기원미사, 위령미사에서는 화답송의 선택이 주례사제에게 맡겨져 있다. 이때 주례사제는 각 미사에 참여하는 회중을 사목적으로 고려하면서 더 적합한 화답송을 독서집에서 선택하여야 한다(참조. 독서지침 89항). 그리고 회중이 쉽게 기억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각 전례시기별로 1개의 후렴씩, 그리고 연중시기에 6개의 후렴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참조. 독서지침 89항; 독서배분 173-174항).41)


1.4.2. 부속가

부속가(Sequentia o Prosa)는 축일에 알렐루야에 덧붙여진 노래를 말하는데, 12-13세기에 절정에 이르러 아주 많은 부속가가 나타나, 약 5000곡 이상이 현재까지 기록으로 전해진다. 부속가의 단순한 가락은 회중의 참여를 촉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알렐루야와 복음봉독 사이라는 부속가의 위치는, 이 순간의 전례거행의 고유한 역할에 대한 관심을 저해하게 되었다. 알렐루야는 복음봉독과 밀접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세 말엽 많은 곳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성소의 남쪽에 있는 주례석으로 봉헌예물을 운반하는 예물준비 예식을 행하기도 하였다.42)


음악학자들 사이에 부속가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벌어졌다. 비록 지금까지, 부속가가 알렐루야의 마지막 음절 “a”에 대한 장식음(본문없는 Jubilus 가락이라 부르기도 함)에 라틴어 혹은 이태리어 가사를 붙인 것으로, 처음에는 선창자가 해당 장식가락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이라는 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몇몇 학자들은 최근 이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부속가의 발전과정에서, 성직계열의 전례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대중예술의 강력한 표현력이 표출된 전례음악의 진정한 “대중적” 형태를 발견하기도 한다. 많은 부속가들이 라틴어 가사로 쓰여졌고 그 가락이 길고 또 섬세하게 잘 작곡된 것으로 미루어 이들 부속가가 수도원의 성가대에 의해 작곡되고 또 불리웠던 것으로 여겨진다.43)


비오 5세의 미사전례서(1570년)는 당시까지의 부속가의 과도한 물량을 떨쳐 버리고, 1) 부활주일의 Victimae pascali laudes, 2) 성령강림주일의 Veni Sancte Spiritus, 3) 성체성혈주일의 Lauda Sion, 4) 위령미사의 Dies irae의 단 네 곡의 부속가만 남겨놓았다. 그 후 교황 베네딕도 13세가 통고의 마리아 축일을 모든 교회에서 지내도록 보편전례력에 등록하면서 Stabat Mater라는 부속가를 첨가하였다.4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바오로 6세의 미사전례서(1970년)는 이전의 부속가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위령미사의 부속가 Dies irae가 삭제되어 다시 4곡이 됨), 알렐루야 앞에 배치하였다. 부활주일과 성령강림 주일 이외에는 선택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다.45)


2002년 ‘미사지침’은 말씀전례에서 2독서 다음에 그리고 알렐루야 앞에 경우에 따라 노래하게 되는 부속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4항] 부속가(sequentia)는 파스카 주일과 성령강림 주일 외에는 선택적이며 알렐루야 앞에(ante Alleluia) 노래한다.


1975년 미사전례서부터 부속가를 알렐루야 앞에 배치하였는데, 그 결과 부속가가 이전 비오 5세의 미사전례서에서처럼 알렐루야 이후 부제가 독서대로 가는 행렬을 동반하는 노래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사실 부속가는 해당 축제일의 주제와 긴밀하고 한정적으로 연결된 찬미가이고, 각 축제일에 고유한 가사와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마치 “해당 축제일의 찬미가”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46)


1.4.3. 복음전 환호

복음전 환호는, 부속가를 제외하고, 말씀전례에서 독서들 사이에 나타나는 두 번째 노래로, 화답송에 이어 또 하나의 시편노래가 배치되었는데, 반복되는 알렐루야가 앞뒤에 동반되었다. 이 노래와 복음의 연관성은 4-5세기의 위경(apocrypha)에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나서 복음을 선포하라.”47)고 증언되어 있다.


유다 전례에서 유래하는 알렐루야는, 묵시록 19,1-7에 의하면 천상 예루살렘의 “기쁨의 외침”을 구성한다. 복음전 환호를 동방교회의 모든 전례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이 노래의 고대성에 호의적인 듯 하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전례인 경우에 그 상황은 다르다. 밀라노, 스페인과 갈리아 전통은 이 노래를 모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로마에서는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파스카시기 외에도 미사에서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는데,48)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만약 이것을 복음 전 노래와 연관지을 수 있다면 예루살렘의 전통을 물려받은 몇몇 비잔틴 전례전통이 유입된 7세기 후반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49)


한때 서방교회에서는 동방의 “기쁨의 외침”과 달리, 알렐루야를 일년 내도록 모든 상황(장례미사에서도)에서 사용하여, “파스카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그 후 사순시기와 같이 참회의 성격을 지닌 날에는 알렐루야의 사용을 자제하고 다른 복음 전 노래를 사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사순시기의 시작부분에 알렐루야를 떠나보내는 예식과 파스카 성야에 알렐루야를 맞이하는 예식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중세에는 여기에 약간의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였다.50)


비오 5세의 미사전례서(1570년)에서 알렐루야는 종종 시편도 아니며 때로 성서본문도 아닌 구절과 함께 노래되었다. 사순시기에는 다른 노래를 불렀는데 후렴 없이 시편을 한 소절 불렀다.51)


바오로 6세의 미사전례서(1970년)에서 알렐루야는 복음 전에 노래하여, 보통 제대에서 독서대로 이동하는 행렬을 수반한다. 시편구절이나 복음구절 등 성서구절을 동반한다. 사순시기 동안 알렐루야는 생략하고 다만 복음 전 구절만 실행한다. 이 부분은 노래하거나 생략할 수 있다.52)


2002년 ‘미사지침’ 62-63항은 말씀전례에서 복음봉독 전에 노래하는 복음전 환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2항] 복음 바로 앞에 오는 독서가 끝나면 전례시기에 따라 예식 규정에 규정된 대로 알렐루야나 다른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환호는 그 자체로 예식 또는 행위가 된다. 이렇게 신자들의 회중은 노래를 하면서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이 노래는 모두 서서 하고 성가대 또는 선창이 인도하며 사정에 따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구절은 성가대나 선창이 노래한다.


- 가)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 모든 시기에 노래한다. 구절은 독서집(미사 전례 성서)이나 화답송집에서 취한다.

- 나) 사순시기에는 알렐루야 대신에 독서집에 제시된 복음 전 구절을 노래한다. 층계송집에 있는 대로 다른 시편 또는 영송(詠誦)(tractus)을 노래할 수 있다.


[미사지침 63항] 복음 전에 단 하나의 독서가 있을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한다.


- 가)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시기에는 알렐루야 시편(psalmus alleluiaticus)을 바치거나 구절을 동반한 알렐루야를 시편과 함께 바칠 수 있다.

- 나)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는 시기에는 시편과 복음 전 구절을 함께 바치거나 시편만 바칠 수 있다.

- 다) 알렐루야나 복음 전 구절은 노래로 부르지 않을 때는 생략할 수 있다.


복음서를 봉독하기 전에 알렐루야를 구절과 함께 노래한다. 이 노래는 앞선 독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복음 안에서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므로”(미사지침 62항), 묵상의 성격보다는 환호의 성격이 더 강하다. 사순시기를 제외하고 회중의 환호는 항상 “알렐루야”이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를 향한 환호이므로 모두 서서 노래한다(미사지침 62항).53)


결국 복음 전 노래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즉, 1) 행렬동반: 독서대로 이동하는 복음행렬을 동반하는 역할, 2) 인사환호: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환호로 공동체가 복음을 경청하도록 준비하는 역할.54)


알렐루야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노래한다(참조. 미사지침 62항). 1) 성가대나 선창이 후렴(알렐루야)을 인도한다. 2) 회중은 후렴을 반복한다. 3) 성가대나 선창은 구절을 노래한다. 4) 회중은 후렴을 반복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회중의 후렴 이후에 성가대나 오르간이 후렴을 좀 더 길게 반복하기도 하는데, 특히 복음행렬이 독서대에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을 경우에 그러하다.55)


복음 전 노래의 본질적으로 음악적인 성격은 ‘미사지침’에 공식적으로 언급되어, 노래로 부르지 못할 경우에는 차라리 생략하라고 말할 정도이다(참조. 미사지침 63항). 따라서 복음 전에 단 하나의 독서만 있는 평일미사의 경우에, 화답송과 알렐루야를 둘 다 노래하거나, 혹은 알렐루야를 완전히 생략할 수 있다.56)


1.4.4. 신경

비록 2002년 ‘미사지침’ 67항에서 신경의 여러 가지 역할에 대해서 잘 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사전례에서 신경은 왠지 미사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단수형 ‘나는 믿나이다’를 사용하는 신경의 형태는 전례적 복수 ‘우리’와 구별되는 것으로, 그것은 신경이 세례예식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로마에서 사용된 세례성사용 신앙고백문으로, 교황 빅토르(189-197)의 시대까지 연대를 추정하며, 히폴리투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57) 그러나 로마 미사전례서는 동방교회의 경우와 동일하게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선호하며, 이것 역시 원래 세례예식의 신앙고백문에서 유래한다.58)


신경이 미사전례에 도입된 것은 먼저 동방에서 였으며, 단성론(monofisita)의 이단에 대항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디모테오(512-518)가 “모든 미사에서 신경을 외울 것을 결정하였기”59)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오키의 경우에는 확실히 5세기 말의 총대주교 Pietro Fullone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동방교회의 초기 신경은 분명히 “Filioque”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후대에 서방에서 도입된 것이다. 대부분의 동방교회는 미사시작 후 즉시 혹은 감사기도 직전에 신경을 외었다. 비잔틴 교회와 곱트 교회는 신경 후에 평화의 인사를 하였다. 동방에서는 전통에 따라서 사제가 홀로 신경을 외우거나 회중전체가 외우거나 하였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서방교회의 영향을 받아 복음봉독 후에 부제가 미사책을 높이 들고 신경을 외운다.60)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디모테오와 같은 시기인 6세기에, 신경은 아직 비잔틴 통치의 영향 아래에 있던 스페인에 전달되었다. 온 백성과 함께 아리우스 이단으로부터 되돌아온 비시고트 민족의 왕 Reccardo는, 589년 제3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모든 미사전례에서 신경을 외울 것을 결정하였다. 이때 신경은 주님의 기도 바로 앞에 배치되었었다. 계속해서 동방에서 전해진 신경은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샤를마뉴-카알대제(Carolus Magnus, Charlemagne, Karl der Große)의 도시 아헨(Aachen)에 전해졌다. 그 후 양자론의 이단이 발생하자, 카알 대제, 알퀸, 아퀼레이아의 바오로 등은 복음봉독 후에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도입하였고, 이때 어떤 그리스 본문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Filioque” (또한 성자로부터)를 추가하였다. Aix-la-Chapelle의 궁정에서 유래한 첨가는 성가집(antiphonale)에 힘입어 널리 보편화 되었다. 레오 3세는 첨가된 부분을 인준하지 않았지만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편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기 위해 1014년 로마에 온 하인리히 3세가, 로마교회가 신경을 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한 11세기가 되어서야 알프스 이북에 신경이 널리 전파되었다. 교황 베네딕도 8세는 황제 하인리히 3세의 요구에 응하여 로마의 미사전례에 신경을 도입하였지만, 그 폭을 조금 좁혀 주일과 대축일 미사에서만 외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밀라노 교회는 ‘주님의 신경’(Symbolum dominicale)이라는 이름으로 9세기 말경 도입되었는데, 대부분의 동방교회에서처럼 이 신경을 감사기도 직전에 배치하였다.61)


2002년 ‘미사지침’ 67-68항 그리고 137항은 말씀전례에서 강론 다음에 노래하는 신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7항] 신경 또는 신앙 서약은 회중을 이룬 백성 전체가 성서 독서에서 선포되고 강론에서 설명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도록 도와준다. 나아가 성찬례 거행을 시작하기 전에 전례적 용도로 인준된(probata) 양식문(樣式文, formula)으로 신앙 규범을 서약함으로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기억하고 고백하는데 도움을 준다.


[미사지침 68항]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에 사제와 백성이 함께 노래하거나 외운다. 또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거행에서도 외울 수 있다. 노래로 바치는 경우 사제가 시작하거나 필요에 따라 선창 또는 성가대가 시작할 수 있다. 모두 함께 노래하거나 백성과 성가대가 교대로 부른다. 만일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 모두 함께 낭송하거나 두 편으로 나누어 서로 교대로 낭송한다.


[미사지침 137항] 사제와 백성은 모두 서서 함께 신경을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라는 구절에서 모두 깊숙이 절한다.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과 주님의 성탄 대축일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는다.


2002년 ‘미사지침’에 의하면,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 그리고 특별히 성대한 전례에서 외우도록 하고 있다. 신경은 이미 독서와 복음으로 선포되었고, 강론을 통해 구체화 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회중의 응답이며 성찬례를 통해 거행될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경을 노래하거나 외우면서 공동체는 다시 한 번 세례 때의 신앙을 생활에서 실천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현행 규정은 신경의 3개의 본문을 제시하고 있다. 1)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주로 주일과 대축일에 사용한다. 2) 사도신경은 어린이 미사에 주로 사용한다.62) 3) 파스카 성야나 세례성사예식미사에서는 문답형식으로 된 신경을 사용한다. 결국 이 고대의 신학적 표현은, 그것을 성장시킨 이단들에도 불구하고, 신적 지혜에 대하여 같은 신앙의 복종을 표현하는 모든 교회의 통교를 표현한다.63)


1.5. 전례회중의 화답(3): 기도

말씀전례의 기도부분으로 사제가 복음선포 전에 준비하면서 홀로 바치는 기도가 있고, 부제에게 주례사제가 강복하는 기도도 있으며, 복음선포 후에 복음선포자가 바치는 “이 복음말씀으로...”의 기도도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말씀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얻은 백성이 교회 전체에 필요한 것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는”(미사지침 55항) 보편 지향 기도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1.5.1. 보편지향기도

2세기 성 유스티누스의 ‘호교론’ 제1권은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138-161)에게 쓰여진 것으로, 65장과 67장에 보편지향기도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64) 당시 보편지향기도는 서서 바쳤고 유스티누스는 이를 모든 회중이 함께 한다는 뜻에서 “공통기도”(oratio communis)라고 불렀다.65)


동방교회에서 보편지향기도는 4세기 말경 교송(litania)의 형태로 정착되었는데, 부제가 지향을 말하면, 회중이 “기리에 엘레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이 응답은 큰 성공을 거두어 다른 언어권 전례에서도 희랍어로 사용할 정도였다. 한편, 이집트 교회의 “세라피오 감사기도문”(eucologio di Serapione)은 작물의 수확, 교회, 공동체와 주교를 위한 세 가지 지향을 소개하고 있다.66)


로마전례에서 “신자들의 기도”(Oratio fidelium)의 원형은 지금도 로마 미사전례서의 성금요일 예절에 남아있는 “장엄기도”(Orationes Sollemnes)형태이다. 이 “장엄기도”에서 권고와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laudes)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기념(anamnesis)에 많은 자리를 할애하였다. 이것은 먼저 지향을 말하고, 모두가 서서 혹은 무릎을 꿇고 잠깐 침묵 중에 기도하고, 마지막에 사제가 청원의 내용을 기도로 바친 다음 회중의 ‘아멘’으로 마치게 된다. 이러한 형태는 이미 5세기 중엽에 확립된 것이다. 기도지향들은 청원기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때로 사제의 청원기도 없이 백성의 침묵기도와 함께 사용되었다.67)


그 후 교황 젤라시오(492-496)의 시대에 “젤라시오 청원기도”(Deprecatio Gelasii)가 도입된다. 이 기도는 인간적 상황에 대한 언급과 기도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여건에 더 많은 자리를 할애하였다. 이 기도는 교송의 형태로, 부제가 지향을 말하면, 회중은 “기리에 엘레손” 혹은 “Domine exaudi et miserere”로 응답하였는데, 동방교회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북부 이탈리아 혹은 서방의 다른 나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미사 시작부분에 “기리에”가 529년 이전에 도입되자,68) 6세기경 “장엄기도”는 사라지게 되었다.69)


로마전례가 카롤링 왕조에 전해질 때, 보편지향기도 없는 미사가 갈리아에 널리 퍼졌다. 다행히 몇몇 지역은 옛 기억을 보존하고 있었지만, 10세기 초의 증언에 의하면, 사제는 강론 후 회중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다양한 지향을 기도하라고 초대하였고, 그 후 사제는 각 지향에 적합한 기도를 “주님의 기도”에 이어 바쳤다. 이 관습은 중세 전반에 걸쳐,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다. 중세 말엽 프랑스 지역에서는 “prières du prône”(설교의 기도)라 부르는 이때에 기도 이외에 공지사항, 권고 및 5분교리까지 포함하여 이루어졌다. 16세기 중엽 트렌토 공의회의 사목적 개혁은 다시 지향들을 사용하도록 복구하였다. 이 지향들은 옛 장엄기도의 것들과 유사했지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도로 제한되었다.70)


다행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에서 보편지향기도의 복구를 촉구하였고, 회중은 이 기도에서 거룩한 교회를 위하여, 정치인들을 위하여, 곤경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참조. 전례헌장 53항).


2002년 ‘미사지침’은 보편지향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사지침 69항] 보편지향기도 또는 신자들의 기도에서 백성은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로 받은 자신의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를 바친다.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보통 이 기도를 통하여 거룩한 교회, 우리를 다스리는 위정자,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사지침 70항] 기도 지향 순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한다: 가) 교회에 필요한 사항, 나) 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 다)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들, 라) 지역 공동체. 그러나 견진, 혼인, 장례와 같은 특별한 거행에서는 그 상황에 알맞은 특별한 지향을 포함시킬 수 있다.


[미사지침 71항] 주례 사제는 좌석에서 이 기도를 진행한다. 주례 사제는 간단한 권고로 이 기도를 이끌며 신자들이 기도하도록 초대하고 맺는 기도로 이 기도를 마감한다. 기도 지향들은 분별력 있고 창의적으로 그리고 간단한 말로 이루어져 단순해야 하며 또한 공동체 전체의 청원을 표현해야 한다. 보통 기도 지향은 독서대나 다른 적절한 장소에서 부제나 선창 또는 독서자나 평신도가 바친다. 백성은 서서 기도를 바친다. 각 지향 후에 응답 형태의 기원을 함께 바치면서 또는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자신의 청원을 표현한다.


바오로 6세의 미사전례서(1970년)부터, 보편지향기도는 거의 14세기 동안의 외면 후에야 로마 전례 안에서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71) 주례자의 권고와 맺음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며, 부제나 다른 봉사자가 공동체 전체의 청원을 표현하는 지향들을 말하고, 회중은 응답을 함께 하거나 혹은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자신의 청원을 표현한다(참조. 미사지침 71항). 기도지향은, 이 기도가 참으로 보편지향기도가 될 수 있도록, 4가지 지향으로 하였다(참조. 미사지침 70항). 보편지향기도도 또한 그 거행에 있어서 음악적 구성을 가능한 살리는 것이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72)


II. 강론의 방법과 점검


독서와 복음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정보와 같은 단순한 역사적 전망 안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러한 이해는 전례에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성서단락이 많기 때문에 지루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오늘날의 청중에 대한 메시지나 호소 그리고 그러한 호소에 자신을 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73) 여기에서 강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미 앞(1.2. 하느님의 말씀선포(2): 강론)에서 강론과 설교의 구별, 강론의 역사적 실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그리고 규정들을 살펴보면서, 강론의 본성, 필요성, 봉사자, 시기, 내용,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이번 장에서는 미사전례에서 강론을 더 올바르게, 합당하게,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법과 강론의 점검에 대해 살펴본다.


2.1. 강론의 방법

이미 살펴 본 것처럼, 교회문헌은 강론의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강론은 활기찬 해설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강론은 묵상의 열매이어야 하고, 잘 준비되며,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청중의 특별한 입장을 고려하여,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강론 내용을 잘 알아듣도록 행해야 하는 것’이다(참조. 독서지침 24항, 미사지침 65항). 그러면 여기에서 제시된 사항들을 중심으로 강론의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2.1.1. 활기찬 해설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독서지침’은 강론이 “활기찬 해설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Hac viva expositione... maiorem efficacitatem acquiere possunt)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24항). 말씀전례의 효과를 얻는 것을 말씀전례를 통한 열매맺기라고 부를 수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는 사람에게서 ‘열매를 맺는다.’”(1131항)라고 하며 성사의 열매맺기에 대해 말한다. 이를 말씀전례에 적용해 본다면, 말씀전례의 열매맺기는 신자들 스스로가 독서들 본문과 화답송, 복음 전 노래 등의 성가, 강론 등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 기도, 가사 등에 비추어 개인의 삶을 조명해 보고 그 말씀과 본문에서 위로를 얻으며, 생활개선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신자들 스스로도 말씀전례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겠지만, 신자들이 말씀전례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강론자는 마땅히 강론 가운데 활기찬 해설로 신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2002년 ‘미사지침’은 신자들이 미사전례에 효과적으로 참례할 수 있도록 강론자인 사제는 이미 독서의 선택에서부터 “긴 독서 또는 짧은 독서를 선택할 때는 독서의 결실과 함께 독서를 듣는 신자들의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신자들의 본문에 대한 이해 능력은 본문을 설명하는 강론으로 보충된다.”(360항)고 강조한다.74)


2.1.2. 강론은 묵상의 열매이어야 하고 잘 준비되어 너무 길거나 짧지 않도록

‘독서지침’이 말하기를, “강론은 묵상의 열매이어야 하고, 잘 준비되며,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도록”(homilia revera sit fructus meditationis, apte parata, non nimis protracta nec nimis brevis)하라고 한다(24항). 그러면 지금부터 ‘묵상을 통한 강론의 준비’와 ‘강론시간의 길이’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묵상을 통한 강론의 준비’는 세 개의 성경독서에 대한 첫 대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강론준비를 위한 성서읽기에서도 ‘성서를 읽기 전에 바치는 기도’나 ‘성령을 청하는 기도’ 등으로 합당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강론자의 묵상의 열매가 강론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론자가 성서본문을 합당하게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며, 올바른 묵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하기 때문이다.75) ‘묵상을 통한 강론 준비’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① 첫 대면: 세 개의 성경독서에 대한 첫 대면과 첫 분석은 해당 성서본문의 문학유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학유형이 이야기 유형, 비유 유형, 찬가 유형, 편지 유형 등 다양한 문학유형 가운데 어디에 속하나 파악한다. ② 주제파악: 세 개의 성경독서의 문학유형을 파악하였다면, 각 성서본문에서 핵심어휘(termini-chiave), 중심문장(frasi più rilevanti)을 선별하여 주제를 이끌어 내도록 한다. ③ 성서 묵상: 세 개의 성경독서에 대해 성서적 관점에서 성서묵상을 실시한다. ④ 전례문 묵상: 세 개의 성서본문과 전례주년과의 관련을 먼저 살펴본 다음(전례주년의 해당 전례시기와 세 개의 성경독서의 선택 사이의 연관성, 세 개의 성경독서 상호간의 연결성), 해당 전례거행에 사용되는 다른 전례문들(기도문: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사순시기); 노래: 화답송, 복음전 환호, 입당송, 영성체송)도 함께 묵상한다.76) “급한 김에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늘어놓는 강론은 고막을 울리는 소리일 뿐이다. 책을 보고 공부해서 전하는 강론은, 뇌리에 한 가지 지식을 심어줄 뿐이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닿을 것이다.”77)


그리고 ‘강론시간의 길이’에 대해 ‘독서지침’은 “강론의 길이는 너무 길거나 짧지 않도록”(24항) 준비하라고 하는데, 설문조사결과를 분석해 보면, 강론시간은 10-15분이 가장 적당하다. 강론시간으로 “사실 10-15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한 주간을 살게 하는 영적인 양식으로, 주님 말씀을 전하는데 어떻게 10-15분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전체 미사 시간과의 균형이라든지 15분이 넘었을 경우 지루함을 감안한다면 10-15분이 가장 적당한 길이가 될 것이다.”78)


2.1.3. 청중의 특별한 입장을 고려하여

‘미사지침’은 강론을 준비하거나 행할 때, “청중의 특별한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oportet explicatio... peculiarium necessitatum auditorium)고 말한다(65항). 여기서는 청중의 특별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먼저 교구나 본당의 장기적인 사목방침에 따라 회중의 입장을 고려하여야 한다. 교구에서 실시하는 교구 시노드, 교구설정 주년행사, 교구차원의 사목행사 등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또 그 실천하는 단계에 비추어 해당 전례회중의 상태나 입장이 어떤지 고려한다. 또한 본당에서 준비하고 실시하는 사목방문, 본당설정 주년행사, 본당신설, 성전건축, 본당구역 분할 등 본당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해당 전례회중의 상태나 입장이 어떠한지 잘 살펴야 한다.


원래 전례회중은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불려 모여온’ (ekklesia) 회중이므로 해당 전례거행이 전례회중의 성격을 결정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런 경우는 주로 특별한 전례거행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고백성사, 성품성사 등 성사를 집전하는 미사에서 그리고, 아빠스 혹은 대수녀원장의 축복예식, 동정녀 봉헌예식, 수도자의 성대서원 예식, 독서자와 시종자의 직수여 예식, 장례식, 성전 봉헌 예식, 교구 시노드의 개회식 혹은 폐회식 등 각종 예식과 함께 거행되는 미사에서 전례회중은 해당 성사나 예식과 관련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전례회중의 입장을 고려하여 강론을 잘 준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일 복음 말씀과 최근 신자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대두되는 문제들 사이에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해당 주일의 복음 말씀이 신자들이 당면해 있는 여러 문제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역 사회나 국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야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해당 주일의 성서 말씀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79)


2.1.4.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잘 알아듣도록


‘독서지침’은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강론 내용을 잘 알아듣도록 강론이 행해져야 한다.”(in ea ad omnes praesentes etiam pueros et incultos attendatur)고 말한다(24항). 당연히 강론은 모든 참석자들이 잘 알아듣도록 쉽게 강론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론자 스스로가 본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강론자가 완벽하게 소화한 내용을 잘 설명한다면 그 강론은 틀림없이 쉽게 회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강론이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주제를 조금 더 깊이 다루기 위해 회중의 범위를 어린이로 한정하여 ‘어린이 강론’ 즉 특별히 어린이를 위해 따로 마련된 미사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강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대 심리학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아동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정서의 힘으로 유년기와 소년 초기의 종교적 체험을 형성한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시던(참조. 마르 10,16) 예수님을 본받아 초등학교 학생, 더 나아가 첫영성체 이전의 어린이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어린이 미사에는 어린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강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강론은 주일 복음을 중심으로 하기에, 어린이들의 흥미 위주의 옛날이야기로 흘러 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강론 도중 어린이들이 떠든다고 벌을 주는 것은 자신의 강론실력이 부족함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 강론’에서 서두는 굉장히 중요하다. 어린이들에게 특정한 문장 “예수님 사랑해요” 등을 몇 번씩 큰소리로 이야기 하게 하는 것도 어린이들이 집중하는 데 효과가 있다. 권위주의적 강압적 강론방식보다는, 구체적인 묘사로 어린이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들에게 반복학습의 효과가 크므로, 신앙의 핵심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반복적 강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80)


강론을 듣는 대상인 어린이의 입장에서 잘 듣고, 잘 생각하고, 잘 이해하고,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강론이 실시되어야 한다. ‘어린이 강론’의 유형으로는 성서본문에 재미있는 살을 붙여서 하는 ‘성서강론’, 성서본문의 말씀을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해설해 주는 ‘해설강론’, 성서본문에서 적당한 제목을 선택하여 그 단어를 중심으로 하는 ‘제목강론’, 성서본문에서 믿을 교리를 선택하여 신앙의 진리를 중심으로 하는 ‘교리강론’, 성서본문과 관련된 예화를 찾아 활용하는 ‘예화(동화)강론’,81) 성서본문과 관련된 사물을 직접 보여주면서 행하는 ‘실물강론’, 강론의 내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림(동영상)을 융판, 슬라이드, 빔 프로젝트 등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그림(시청각)강론’, 성서본문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성가를 함께 부르면서 행하는 ‘음악(성가)강론’, 강론내용을 연극화하여 표현하는 ‘연극강론’, 강론내용을 종이에 쓰거나 인쇄하여 나누어 주고 분배하게 하거나, 외우게 하는 ‘문서강론’ 등이 있다.82)


2.2. 강론의 점검


가끔 자신의 강론 방식을 점검하는 것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점검은 특정한 전례거행에서 행한 한번의 강론에 대해서나 혹은 일년간의 강론 전체에 대해서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강론의 점검에 있어서, 특히 세 가지 점검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① 강론의 내용에 대한 점검: 성경독서의 본문에 충실한 강론인가? 전례거행과 관련된 내용의 강론인가? 공동체의 삶과 시대의 징표를 살피는 강론인가? 강론의 중심주제를 잘 선정하고 적절하게 심화하였는가? 중심주제를 돕는 보조주제들을 적절하게 선발하였는가? 또한 자신만의 강론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사항을 질문한다. 어떤 주제가 자신의 강론에 자주 등장하는가? 어떤 주제가 자신의 강론에 비교적 적게 등장하는가? 어떤 주제는 습관적으로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가? ② 강론의 실천권고에 대한 점검: 자신의 강론에 있어서 실천권고의 방향이 어떤 단계의 그리스도교적 삶을 보통 지향하는가? 개인적 삶의 단계인가? 가족 공동체의 삶의 단계인가? 지역교회 공동체의 삶의 단계인가? 사회적 삶의 단계인가? ③ 강론의 화법에 대한 점검: 전례회중들이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는가? 회중을 향한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강론에서 어떤 화법(말투)을 즐겨 사용하는가? 강론에서 자신의 음색(톤)은 어떠한가?83)


맺는말

지금까지 ‘말씀전례와 강론’이라는 주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먼저 1장에서는 말씀전례에서 하느님과 백성의 대화구조에서 하느님의 말씀 선포 부분을 ‘독서와 복음’, ‘강론’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으며, 백성의 화답 부분을 ‘침묵’, ‘노래’, ‘기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 하느님의 말씀 선포인 ‘독서와 복음’에 있어서, 독서를 통하여 회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식탁이 마련되고 성서의 보고가 열리며, 독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주시며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신다(참조. 미사지침 57항). 따라서 백성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29항). 복음봉독이 말씀전례의 정점이며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점은, 비복음독서의 봉독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여러 가지 특별한 요소들이 복음독서를 동반하면서 표현하는 장엄함에 미루어 알 수 있다.

 

2. 또 다른 하느님의 말씀 선포인 ‘강론’은 전례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는 전례 자체의 한 부분이다(참조. 전례헌장 52항). 강론은 말씀선포와 성찬례를 하느님의 놀라운 일 혹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되게 하고, 신자들은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게 도와주고, 신자들이 강론의 설명과 그 묵상을 통하여 신앙으로 얻은 바를 삶으로 표현하도록 그리스도교 삶을 양육한다(참조. 독서지침 24항).


3. 말씀에 대한 백성의 화답인 ‘침묵’은 전례 거행의 한 부분으로서 제 때에 지켜져야 한다. 침묵의 성격은 그 침묵이 시행되는 순간에 따라 다르다. 말씀전례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여 살펴볼 때, 우선 말씀전례 전의 침묵은 말씀전례를 거행하면서 묵상을 촉진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참조. 미사지침 56항). 독서와 강론 후의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하는데 도움을 주며(참조. 미사지침 45항), 보편지향기도 가운데 침묵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청원을 표현하는 순간이다(참조. 미사지침 71항).


4. 말씀에 대한 백성의 또 다른 화답인 ‘노래’ 혹은 성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거룩한 예식들을 장엄하게 노래로 거행할 때에 그 전례행위는 더욱 고귀한 형식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에(참조. 전례헌장 113항), 미사거행에서 노래를 대단히 중요시해야 하며(참조. 미사지침 40항), 특히 주일과 의무 축일의 미사에서 그러하다(참조. 미사지침 115항). 말씀전례에서 노래부분은 화답송, 부속가, 복음전 환호, 신경이고, 그 밖에 노래로 거행할 수 있는 부분은, 독서전체, 독서맺음(주님의 말씀입니다.), 독서맺음에 대한 환호(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전 인사(주님께서 여러분과...), 복음도입(... 거룩한 복음입니다.), 복음도입에 대한 환호(주님 영광받으소서.), 복음전체, 복음맺음(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맺음에 대한 환호(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지향기도의 도입, 보편지향기도의 응답(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보편지향기도의 맺음기도 등이다.


5. 말씀에 대한 백성의 또 다른 화답인 ‘기도’는 특히 보편지향기도로 나타난다. 보편지향기도에서 백성은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로 받은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린다(참조. 미사지침 69항).


그리고 2장에서는 ‘강론의 방법과 점검’이란 제목으로 강론의 실천적인 측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먼저 ‘강론의 방법’에 대해서는 ‘활기찬 해설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강론은 묵상의 열매이어야 하고 잘 준비되어 너무 길거나 짧지 않도록’, ‘청중의 특별한 입장을 고려하여’, ‘어린이나 평범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이 잘 알아듣도록’ 실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강론의 점검’에 대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인 점검사항을 제시하였다.















약어

AAS = Acta Apostolicae Sedis, Roma 1909ss.


CA = Corpus apologetarum Christianorum saeculi secundi.


CCL = 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Turnhout 1954ss.


GeV = L.C. Mohlberg, Liber sacramentorum Romanae Ecclesiae ordinis anni circuli[= RED Series Maior, Fontes IV], Roma, 19813.


PG = J.P. Migne, Patrologiae Cursus Completus. Series Graeca, Paris, 1857-1866.


PL = Patrologiae Cursus Completus. Series Latina, Paris, 1844-1855.


가톨릭교회교리서 =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옮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Pp. Ioannes Paulus II,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97.


교회법 =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옮김, 교회법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Pp. Ioannes Paulus II, Codex Iuris Canonici,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3.


독서배분 = Sacra Congregatio pro Sacramentis et Cultu Divino, Ordo Lectionum Missae,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1, 1-451.


독서지침 = Sacra Congregatio pro Sacramentis et Cultu Divino, “Praenotanda”, Ordo Lectionum Missae,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1, XI-LIV.


미사지침 = Congregatio de Cultu Divino et Disciplina Sacramentorum, “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 Missale Romanum,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02, 17-86.


미사통상문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미사통상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Congregatio de Cultu Divino et Disciplina Sacramentorum, “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 Missale Romanum,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