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묵상

기적(奇蹟) - 은총(恩寵)

더 창공 2009. 9. 21. 10:34

기적(奇蹟) - 은총(恩寵)

 

누군가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요 앞으로 살아갈 날도 기적일 것이라고 했다.수긍이 가는 말이다. 70여 년간 살아온 내 삶을 돌이켜 보아도 그런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6.25가 발발해 피난 생활을 하고, 중학교 입학 및 고등학교를 졸업 후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내 힘으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또한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집사람을 만나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교직에 몸담고 무탈한 삶을 살다 정년퇴직한 것도 그리고 지금 시골에서 전원 생활하는 것도 이곳에 와서 교리신학원에 진학하고 지금 교리교사를 하는 것도 어쩌면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기적(奇蹟)이란 무엇일까?

비행기가 추락하여 모두 죽었는데 어느 한 사람만이 불가사의하게 살아남았다면 그것도 기적이다. 기적이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말하는데 어쩌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면 요즘은 매스컴을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진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우리 일상의 삶이 기적이라 한다.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착륙하여 모두 산 것은 더 큰 기적이라 한다.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들만이 기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큰 힘에 이끌려 되는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삶 그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수님의 첫 기적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잔치의 흥겨움을 주셨다. 마술로도 얼마든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기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잠시의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마술적 기적들이 많다. 이런 마술을 이용해 순진한 사람을 현혹하여 사기를 치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기적도 당시 사람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마귀의 힘을 빌려 장난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주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는 기적들을 보여 주셨다.

왜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을까? 예수님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지배계층은 불안을 느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고 드디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기적이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기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구제하셨다. 예수님의 기적은 당신의 출세나 명예를 위해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억압받는 이들을 풀어 해방시키시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치유하여 희망을 가지고 온전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의 기적은 병들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가련한 이들을 위한 연민의 정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들에게도 기적을 일으켜 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시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자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라고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표징(表徵)인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들은 성부(聖父)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표징들은 예수님을 믿도록 권유한다. 그러므로 기적들은 성부의 일을 수행하시는 분께 대한 신앙을 굳건하게 한다. 기적들은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한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2,11)“이렇게 예수님은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요한4,54)

이 성경 말씀에서는 기적이란 말 대신에 표징(表徵)이라 쓴 이유는 무엇일까?

표징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징표’을 말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낸 기적들인 표징은 무엇이었을까?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무엇을 사람들에게 깨우치려 했을까? 소외된 이들을 위한 친밀감과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의 정

체를 드러내시려고 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기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正體)를 증명해 보여 주신 표징의 절정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기적이다. 이 부활의 표징으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곧 성자(聖子)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표징을 믿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두고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표징으로 보여주신 기적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기적과는 다르다. 수없이 많은 굶주린 이들을 먹이신 기적, 죽은 이를 살리신 기적의 표징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영원히 죽지 않을 양식을 주시고 죽음 뒤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이 행한 표징들을 우리 삶 안에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기적은 바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恩寵)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기적은 은총이라 여겨진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기적이었다면 주님의 은총 속에 살아왔다는 것이고 앞으로의 삶도 은총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즉 우리 삶 안에서의 기적(奇蹟)은 바로 주님의 은총(恩寵)이다. 내가 잘나서 이만큼 사는 것이 아니라 못난 나를 이끌어 주시고 힘과 용기를 가지고 살게 하시는 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여겨진다.

은총(恩寵)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好意)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기적과 같은 은총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기적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요 주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恩)와 사랑(寵)인 은총(恩寵)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총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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