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나의 몫

더 창공 2008. 10. 15. 09:10

나의 몫

살아가서 사는구나, 어떤 것이 사는 거요, 제 잘난 것 자랑하니, 가는 것은 시간일 뿐,

죽어가서 죽는구나, 어떤 것이 죽음이요, 돌아보니 다 늙었다, 이미 벌써 무덤이라,

이러한 짓 올바를까, 저러한 짓 그르리까, 이런 저런 행위 속에, 언행일치 하나 없네,

여기란 곳 어느 메고, 저기란 곳 어느 메요, 미천한 몸 머무는 곳, 바로 그 곳 아니런가,

어떤 것이 실재인가, 그 무엇이 실체인가, 보이는 것 향할 진데, 실재 실체 있을 손가,

이놈 살이 박복하다, 주변곳곳 넋두리요, 박복한 자 다름 아닌, 바로 이놈 아닐는지,

물어보고 물어봐도, 들려오니 바람소리, 모든 정답 몸에 달고, 누구에게 물어 보나,

어찌하여 이내 육신, 오욕칠정 휘몰아서, 만병 만득 하였는가, 아둔하고 답답하다,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음 오면잠을 자니, 바로 이 몸 머무는 곳, 무릉도원 아니런가.

(오욕(五慾) : 재물욕(財物欲), 식욕(食欲), 색욕(色欲), 수면욕(睡眠欲), 명예욕(名譽欲)

 칠정(七情) : 희(喜):기쁨, 노(怒):성냄, 애(哀):슬픔, 낙(樂):즐거움, 애(愛) :사랑, 오(惡):미움, 욕(欲):욕망)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몫을 생각해보면 마르타의 몫이 나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마리아는 주님을 중심으로 살았고, 마르타는 우선 급한 불을 끄는데 치중하고 세상의 일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 살면서 급한 불을 끄지 않고, 세상을 무시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매일 내 삶에 올라오는 많은 사건들은 지금 당장 불을 꺼야하는 것들이고, 원칙과 진실을 외면하고 과정을 무시하고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언제 원칙과 진실과 과정을 중심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급한 불을 끄고,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에 매달려 살다보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삶을 반추해보면 후회와 회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내 안의 가시나무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할 텐데도 그 실마리를 찾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나를 되돌아보며 이 가을에는 실마리를 푸는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세상의 헛된 욕심들입니다. 나는 언제나 헛된 욕심들이라고 하면서도 내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에게 큰소리도 치면서 펑펑 돈도 써보고 싶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뭉텅뭉텅 자선을 행하고도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계획을 세우기도하고,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밤을 새워가면서 충고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사업계획서도 만들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에 마음이 팔려 있는 나를 보고 극구 말리고 어떤 때는 다투기까지 하면서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어려서 겪었던 많은 아픔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잊은 줄 알고 있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서 후회와 회한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3-40 년 전의 사건들이 생각나고, 내가 실수한 것이나 잘못한 것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슬프고 우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을 타는 남자들은 마음이 외롭고, 그저 쓸쓸하기만 하고 외국말로 센티(Sentimental:감정적인, 정적인, 향수어린))해 진다고들 말 합니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그 아픔이 다시 아픔을 끌어내고, 그 분노가 다시 분노를 만들어내며, 그 슬픔이 새로운 슬픔으로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를 의지하고 나에게서 행복을 찾는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오늘 선서를 하시는 조 청언 다니엘 형제님도 자신의 몫을 선택 하셨습니다.

누가 강요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멍에를 기꺼이 무거운 것으로 선택 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멍에는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무게의 멍에일 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기 자신이 견딜만한 무게를 선택을 하였고, 거기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각자 본인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선택 하시고 선물을 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가정생활, 신앙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었으니, 주저 말고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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