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오늘 마태오복음은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바쁜 사람도, 굳센 사람도, 바람 같던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됩니다.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됩니다. 저녁바람에 문 닫고 낙엽 줍는 아버지가 됩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가녀린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자녀들의 앞날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가장 필요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입니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도적질하는 사람도, 연쇄 살인범 강호순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됩니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말입니다.
아버지가 또 용돈을 주려 할 때. 그때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라서 자식이 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지만,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 용돈을 주지요. 아버지가 평소보다 용돈을 많이 줄때,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용돈을 주면서 "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물어볼 때, 아버지는 외롭다는 표시입니다.
지난밤 과음한 탓에 아침에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을 할 때 아버지는 종종 어제 벗어둔 양말을 다시 신고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참으로 쓸쓸합니다. 자식들이 무심코 "아버지, 발 냄새 나요!"하며 코를 잡을 때 아버지는 웃고 말지만 사실 아버지는 무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평소보다 더 열광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응원할 때, 아버지는 외로운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휴일에 하루 종일 집에 앉아 지난 신문만 뒤적거리고 있을 때 사실 아버지도 자식의 손을 잡고 햇살 좋은 공원을 걷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주 한 주를 견디며 살지요. 지켜야 할, 책임져야 할 가족의 무게로 아버지의 두 어깨는 항상 지치고 힘이 듭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곤히 자고 있는 딸의 볼에 얼굴을 부빌 때 아버지는 하루 종일 딸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따가운 수염이 드문드문 난 얼굴에, 술 냄새를 풍겨도 그 순간 아버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따뜻합니다.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 몸을 뒤척이면서 "아휴, 술 냄새"하며 귀찮아해도 아버지는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딸아이의 시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꺼내보곤 합니다. 그러고는 은근히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지요. "내 딸아이 참 귀엽죠? 예쁘죠?" 그렇게 아버지는 딸아이가 보고 싶을수록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아들 친구의 아버지가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아버지는 외롭고 슬퍼집니다. 친구가 멋진 휴대폰을 자랑하며 들고 다닌다고 아들이 투정을 부릴 때 아버지는 화를 내지만 사실은 더 비싼 휴대폰을 사주고 싶은 겁니다. 자식이 사달라는 것을 돈이 없어서 사주지 못할 때 아버지의 마음은 작고 초라해집니다. 그럴 때 아버지는 통장 잔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평소와는 달리 와인과 장미꽃을 사들고 귀가할 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어떻게 어머니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메마르고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버지는 다만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오늘 꽃을 사들고 온다면, 1,000송이의 꽃보다 더 많은, 마음에 핀 꽃을 가슴에 달고,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와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우리보다 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까닭에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담배만 태우는 사람입니다.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아들이 아버지와 세대 차이를 느낄 때,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아버지는 세대 차이란 말을 모릅니다. 아버지에게 세대란 중요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버지는 늘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자녀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아버지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성묘를 가서 아버지가 자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름을 자식들에게 알고 있느냐고 물을 때, 아버지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가 많이 그리운 겁니다. 자식들에게 어렸을 때는 못 입고 못 먹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는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그 시절의 당신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다만 그리운 겁니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고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은연중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날 모처럼 일찍 귀가한 아버지가 가족회의를 하자며 부산을 떤다면, 아버지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겁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많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술친구들이 아니라, 회사 동료들이 아니라 사실은 가족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가족입니다.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갑자기 "우리 내일 가족사진 찍으러 갈까?" 하면 아버지는 외로운 겁니다. 한참 말도 없이 티브이를 보다, 우리도 가족사진 하나 남겨야 하지 않겠어? 한다면 아버지는 스스로 잘못 살아왔는지 모른다고 어쩌면 자신은 좋은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 버느라 바빠 제대로 된 가족사진 하나 찍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겁니다. 그렇게도 열심히 일한 건 모두 가족을 위해서였는데, 어느 날 문득 가족을 잃었다고 아버지는 느낍니다. 그럴 때 아버지는 거실 벽에 단란하게 찍은 가족사진 하나를 걸어두고 싶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엄한듯하면서도 다정하고,
어려운듯하면서도 편한
아버지,
자랑스럽고 마지막 보루처럼
든든하면서도 언재든지 투정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며,
무심한 듯 초연해도 돌아다보면
언제나
옆에 와 계시는 포근한 그림자,
욕심이라 탓하기에 탓 할 수 없는
영원한 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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