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
성범죄자나 흉악범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영화나 드라마 속의 범죄자는 일반 형사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흉악한 사람인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주변에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가까운 친지, 친구일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겉모습이 깔끔하고 신사 같은 품위를 지니고 있어 겉으로 보아서는 절대 그런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 강호순이 매스컴의 지면과 화면을 도배 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이 모두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속은 썩어문드러져 냄새나는 시궁창이면서도 겉모습은 향기 좋은 향수를 뒤집어쓰고, 비싼 옷으로 그럴싸하게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쾌락과 적당히 타협하고 남들도 모두 약간의 유혹에는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고 합리화하며 진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신앙을, 내 행동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포장지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행여 성당에서만, 신자들과 함께 있을 때만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성당을 다닌다며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흉악한 범죄자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나를 잘 다스리며 살아야겠습니다. 내 안을 투명하고 깨끗하게 잘 닦으며 지내야하며, 성전에서 ‘주님!’만을 외치며 살 것이 아니라 늘 온몸으로 삶에 대해 알려주시는 ‘주님처럼’ 행하며 주님을 따라야하겠습니다.
성무일도 내용에도 보면- 우리의 감각기능 차지하시어 속세의 어두운 밤 몰아내시고, 시간이 다함없는 영원에까지 이 마음 깨끗하게 지켜주소서.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흰옷을 많이 사랑 했고 많이 애용해 왔습니다. 그 의미는 백의민족이라서가 아니라 전에 얼룩이 있었던 아주 오래된 태초의 초자연적인 흰빛, 천사의 흰 빛으로 완전히 희게 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하여 깨끗한 옷을 입고, 가장 겸손함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여 온전히 깨끗한 마음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마음의 깨끗함을 흐리게 하기는 대단히 습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겸손은 더러운 것을 씻는 물과 같으며, 겸손한 사람은 그의 눈이 교만의 옷을 퇴색하게 했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리고 주님께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제 몸과 마음을 깨끗한 흰빛으로 만들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불교에서도 간혹 착한 마음을 냈다가도 그 마음은 곧 사라지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생각 생각에 점점 더 나쁜 짓을 더하게 되나이다. 만약 이를 어기고 먼저 먹거나 깨끗하게 만들지 않으면 목숨을 마친 사람이 복의 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가정에서 집안을 깨끗하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청소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깨끗한 것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엔 집안을 어느 정도 정돈만 해놓으면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깨끗한 집처럼 보이는 겉모양에 더 치중하게 되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게을리 하게 됩니다. 이 같은 타협은 편리하고 설득력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도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햇살이 비치는 어느 화창한 날, 깨끗한 것처럼 보였던 집안은 더럽고 먼지투성이인 본색을 드러내 보임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집안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유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깨끗한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직 자기 마음속이 깨끗한 사람만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까? 지금이 바로 해결해야 할 그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율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역사 안에서 보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살렸지 음식이 그렇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음식은 도구였을 뿐, 그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깨끗한 영혼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마음을 씻으며 산다면 결국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손을 씻는다는 ‘지엽적인 것’(본질적이거나 중요하지 아니하고 부차적인 것) 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씻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저는 마음의 깨끗함을 잃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울고 있습니다. 주님의 발아래에서 웁니다. 그러니 나의 하늘이신 주님은 당신의 관대한 용서와 온정이 넘치는 사랑으로 제 옷을 희게 해주십시오!' 하고. - “그러면 깨끗하여 져라!” 이것이 고해성사입니다. 따라서 자주 고해성사를 보아 깨끗함을 유지해야합니다. -아 멘-
2009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