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사랑[love]

더 창공 2007. 8. 4. 11:04
 

사랑[love] 

문학·도덕·철학·종교 모두에서 가장 근본적인 관념의 하나.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사랑을 둘러싼 사상이 전개되었고 동양에도 인(仁)·자비(慈悲)라는 사상이 있다. 공자의 '효도는 인의 근본'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이라고 하는 것은 부모형제라는 혈연에 뿌리를 둔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런 감정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넓혀가는 것이 인도(仁道)이다. 맹자는 "측은지심은 인의 시작이다"라고 말했고 사람을 불쌍히, 가련히 여기는 동정심에서 사랑이 생긴다고 말했다. 묵자는 "하늘 아래 서로 겸애하라"(<묵자>겸애편)고 말했고, 친족과 타인을 구별하지 않는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慈)는 진정한 우정이며 '비'(悲)는 연민과 상냥함을 뜻한다. 양자는 거의 같은 심정을 가리키고 있으며 중국·한국·일본에서는 자비라는 단어로 하나의 관념을 표현한다. 공자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것인데 거기에서 서로 상대를 연민·위로하는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불가능에 도전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참된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달성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그런 절대적인 사랑을 원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보통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엄격한 생활을 명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어로 사랑은 에로스(ers)·아가페(agap)·필리아(philia)라는 3개의 단어로 표현된다. 이들은 사랑에 있어 본질적인 3가지의 위상을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에로스는 정애(情愛)에 뿌리를 둔 정열적인 사랑이며, 철학자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말했듯이 곧잘 광기의 모습을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일자(一者)와 합일하여 참 실재(實在)로 녹아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상에서 육체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한 신적인 것과의 일체화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망아황홀(忘我恍惚)을 계속 구해가면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만나게 된다. 에로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삶, 참 실재와의 만남을 계속 추구한 끝에 "삶보다 죽음이 바람직하다"라는 기이한 결론에 이른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이런 에로스적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무한한 질적 차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과 인간 사이에는 융합도 실체적 합일도 일어날 수 없다. 다만 신과 인간의 교제가 있을 뿐이다. 신과 인간은 절대의 심연에 의해 격리되어 있는데 어떻게 교제할 수 있는 것일까? 거기야말로 예수의 참된 존재의 의의가 인정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른바 신과 인간의 중보자(仲保者)였다. 신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했다는 것이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증거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신을 안다. 이 중보자가 없다면 신과의 모든 교제는 단절된다."(파스칼). 그러한 아가페적인 사랑에서는 자아가 신을 향해 가는 고조도, 열광적인 해체도 없다. 신과 인간 사이의 교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2개의 주체가 마주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고 존재하는 데에서만 이웃사랑의 교제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필리아의 사랑도 독립된 이성 간에 성립되는 우애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것을 바라는 사람', 또는 '자기와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자기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며, 필리아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에 귀착한다. 이렇듯 이기적인 사랑으로 영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악인까지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리아의 사랑이 아가페에까지 고양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이 아닌 한 인류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위선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코 위선에 빠지지 않는 사랑은 자기애적인 에로스뿐이며 필리아는 에로스적 요소를 잃는 정도에 따라 위선적인 사랑에 빠지기 쉽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필리아적 사랑은 아가페와 에로스의 양 극단을 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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