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묵상

복음을 묵상하면서

더 창공 2009. 1. 30. 09:36

복음을 묵상하면서(빠다킹신부)


지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아마 발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네 다리 수는 보통 15~20쌍이지만, 어떤 것은 170쌍까지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발이 많은데도 서로 꼬이지 않고 절도 있게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하루는 개미가 그 모습을 보고서 지네에게 물었답니다.


“나는 발이 여섯 개밖에 되지 않지만 발이 교대로 척척 나가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네. 그런데 자네는 발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헷갈리지 않고 차례대로 내디딜 수 있나?”


개미의 질문에 지네가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발이 왜 꼬이지 않은지, 이제까지 어떻게 걸어 다녔는지가 의문이었지요. 그래서 걸을 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발이 나갈 때 다른 발은 어떻게 하더라? 또 다음 발은 어떻게 하지?’ 그러다보니 지네의 스텝이 꼬이면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고 다닐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알려고 하니까 더 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사는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몰라도 불편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십니까? 내 머리로 어떤 명령을 내리면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또 피는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 몰라도 내 몸은 잔 고장 별로 없이 24시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알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미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요.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해서 걱정으로 가득할 대도 많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다고 해서,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하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인생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미래를 모른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지 않습니다. 또 미래를 모른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스스로 자라는 씨에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농부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씨에서 싹으로 움트게 하는 힘이 무엇이고,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농부는 모릅니다. 또 하루에 얼마큼씩 자라는지, 그 장면을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밤낮으로 자고 깨다보면 어느새 자라있고 결국 추수할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도 천천히 다가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 나라가 오지 않는 것 같고 그 때문에 답답하지만, 씨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없는 농부의 비유처럼,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걱정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큰 나무를 이루듯, 커다란 하느님 나라를 나도 모르는 순간에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다.(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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