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전례

더 창공 2009. 2. 16. 15:43

전례



● 주님 공현이란 무슨 뜻이며 어떤 축일인지요?

   공현(公顯)이란 ‘나타남’ ‘나타내어 보여 줌’이란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민족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당신이 누구신지 보여 줌으로써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방인인 동방의 세 박사가 베들레헴까지 찾아와서 아기에게 경배(마태 2, 11)하며 선물을 드린 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왕이시며(황금), 하느님의 아들이시고(유황), 또 참 사람이심(몰약)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동방의 세 박사(삼왕)가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했다는 뜻에서 예전에는 ‘삼왕래조(三王來朝)’ 축일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무축일로 지내는 이 축일은 원래는 1월 6일에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이동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고 있는 중요한 축일입니다.  

● 연중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요?

    연중 시기는 34주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님 세례 축일’후 월요일부터‘재의 수요일’ 전까지의 기간과‘성령 강림 대축일’후 월요일부터 대림 시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후 첫 번째 주일을‘주님 세례 축일’로 지내는데, 이론적으로는 이 날이 연중 제1주일이 되며, 다음날 월요일부터 사실상 연중 첫 주간의 전례가 거행됩니다. 교회 전통에서 볼 수 있듯이 연중 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체적으로 경축하게 됩니다. 특히 복음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세례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구원을 위한 그분의 전교 활동과 복음 선포, 기적 행위, 진리에 대한 가르침, 신앙의 성장을 위한 교훈, 교회의 성장하는 모습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중 시기는 이 모든 복음의 종합이며, 하느님 나라로 향한 순례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그리스도왕 대축일’로써 끝을 맺습니다.  

● '미사 해설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요?

     미사 해설자는 신자 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합당하게 봉헌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전례에서 해설자도 봉사자이므로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해야 하며, 또한 <그것만을> 실행해야 합니다.

   미사 전례 총지침은 해설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단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해설자는 필요에 따라 짧게 해설과 권고를 하여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또한 해설자의 설명은 미리 신중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간단명료해야 한다.”(105항). 전례 해설이 간단명료해야 함은 전례헌장에서도 아주 강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 간단명료하여야 하고, 쓸데없는 반복을 삼가야 한다.”(전례헌장 34항). 해설자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해설의 역할을 소홀히 하여 부족하지 않아야 하며, 또 지나쳐서 전례 진행에 사족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미사 해설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미사 해설자는 먼저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 해설자 자신도 봉사자일 뿐 아니라, 또한 전례에 참여하는 구성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기도로 먼저 준비하고 전례에 임해야 합니다.

   ■ 해설자는 특히, 미사전례와 전례주년에 대해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고 묵상을 해야 합니다.

   ■ 해설자는 해설해야 할 내용을 미리 작성하여 주례 사제의 인준을 받아야 합니다. 아울러 전례의 내용을 미리 읽고 모두 숙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 해설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이크 사용은 정확한지,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그 뜻을 전달하고 있는지, 띄어 읽기 등 어법에 맞는지 등을 항상 조심스럽게 점검해야 합니다.

   ■ 해설자도 또한 봉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자 회중의 시선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단정한 옷차림을 갖추어야 하며, 사정이 허락한다면 전례 예복을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 '미사 해설자'가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것들은 무엇입니까?

   전례 시작과 함께 미사 해설자가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유의 사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사 시작 전에 일찍 와서 ‘전례 담당자’와 여러 봉사자들의 참석여부와 이미 준비한 사항과 달리 변경된 내용이 없는지 협의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 그날 미사의 축제적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독서의 성서 표시 말(예컨대, “창세기의 말씀입니다.”)은 독서자가 하지만, 해설자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의 장·절은 결코 언급하지 않습니다.

  ■ 독서 후 <침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독서를 마치고 서둘러 화답송이나 복음 환호송을 시작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해설자나 독서자가 화답송을 할 때에 “화답송!”이라 말하지 않습니다(“영성체송”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례 해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각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 사이의 조화입니다. 조화를 잘 이루도록 서로 연결시켜 주고 묶어줄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가진 봉사자가 해설을 맡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독서자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까?

   독서자는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봉사자입니다. 본래 독서자는 “독서직”이라는 봉사 직무를 받아 수행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본당 공동체 등에서는 직을 받은 고정적인 직무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들 가운데 뽑아 독서의 봉사직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독서 봉독은 단순히 책읽기가 아닙니다. 독서자는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독서자의 입과 목소리를 빌어 당신이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때문에 독서자는 미리 잘 준비하여 합당한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중이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독서자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전례 공동체가 더욱 기도와 영적 성숙으로 이끌리도록 노력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독서자는 자신이 이해하고 깨달은 만큼만 전달합니다. 풍성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독서자 자신도 내용과 의미를 풍부하게 깨닫고 이해해야 합니다.


● 독서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독서자는 합당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독서자는 마음의 준비(성서적 준비와 전례적 준비)와 함께 기술적인 준비도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독서 전문을 읽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 전례에서 독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날 독서는 집에서 미리 읽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사 전에 흘깃 한 두 번 읽어보는 것으로는 결코 부족합니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면서 각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읽고 있는 것을 진정 내가 이해하고 있는지, 또한 제대로 발음하여 읽는 지를 자문해 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독서의 준비를 마치면 독서를 위한 실질적인 연습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독서대에 올라가고 내려올 때에는 “제대”를 향해 절을 해야 합니다. 사제와 교우들이 함께 미사 드리는 제대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음을 봉독할 때에는 봉사자와 모든 교우들이 독서대로 몸을 돌려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 시종 복사는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미사 전례에서 주례 사제의 곁에서 여러 시중을 들어 주례자를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봉사자를 “시종”(acolytus) 또는 “복사”(服事) 라는 말로 지칭합니다.

   복사는 “제대 봉사자”로서 그 임무가 매우 중요하므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봉사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종 복사의 일반적인 준비 사항 : 복사는 공동체에서 모범을 보이는 생활로 비난이나 지적을 받지 않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마음의 준비와 함께 외적인 준비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주례 사제가 제의실에 왔을 때, 복사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복사들의 동작은 모두가 신자들의 시선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고 절도 있게 동작을 취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마음의 준비에서 시작됩니다. 내적인 준비에서부터 외적인 준비에로 차근차근 준비하여 제대 가까이 드리는 미사 전례의 봉사가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미사 전례에서 성가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전례 거행은 언제나 음악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전례 음악은 하느님 경배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전례헌장 112항)를 이루는데 중요한 필연적 요소입니다. 따라서 성가대는 전례 거행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이 있으며, 여기에 해당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지휘자는 전례 안에서 성가대를 직접 이끌어 가는 역할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미사 전례 총지침”도 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104항). 따라서 지휘자는 음악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도록 해야 하며, 신앙에도 모범을 보이는 이라야 합니다.

   반주자의 위치는 성가대의 보조 직무자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휘자가 머리라면 반주자는 등뼈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반주자는 성가대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므로 매우 중요한 봉사자입니다.

   성가는 기도입니다. 깊은 신앙심에서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때문에 성가대원은 노래의 기술보다 신앙의 열성이 우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제대 장식과 "제대 꽃꽂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성당의 장식은 호화롭기보다는 단순하면서도 고상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의 교육과 거룩한 장소의 존엄성에 대한 기여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미사전례 총지침(292항)의 내용대로, 전례 공간을 꾸미는 것은 믿음과 신심을 굳게 하고 전례에 더욱 잘 집중하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제대는 미사 전례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중심이 되는 제대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들을 하게 되는데, 미사전례 총지침은 제대 장식에 대해 새로운 항목을 넣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꽃 장식은 항상 절제 있게 하고 제대 위가 아니라 오히려 둘레에 한다."(305항 신설). 곧 장식은 할 수 있으나 절기에 맞추어야 하며 전체적인 규모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장식은 조화입니다. 때문에 꽃 장식이 본래의 표지보다 더 크게 강조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조화를 해치게 됩니다. "미사전례 총지침"에서 가르치는 대로 장식의 의미와 정신을 항상 잊지 않고 살릴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 어떻게 해야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미사 전례를 통해 구분할 수 있는 신자들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벙어리 신자요, 둘째는 맹꽁이 신자요, 셋째는 앵무새 신자입니다. 벙어리 신자는 전례 시작부터 마침까지 입 한 번 뻥끗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다가 돌아가는 신자를 말하고, 맹꽁이 신자는 맹꽁이가 한 곳에서 울면 다른 곳에 있는 맹꽁이들도 덩달아 울어대듯이, 전례 중에 입은 항상 움직이지만 생각 없이 움직이는 유형의 신자를 말합니다. 앵무새 신자는 앵무새처럼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소리는 잘 내지만, 의미도 모른 채 그냥 기계적이며 습관적으로 읊기만 하는 신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전례의 주체로서 모든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표지인 말과 동작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의 의미를 깊이 체험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 삶과 전례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미사 때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사 중에 우리는 수시로 일어서고 앉는 동작을 취하는데, 예식에서 이루어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례 동작 중 「서는 자세」는 첫째, 존경을 표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봉독할 때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신다고 보고,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듣습니다. 둘째, 서는 자세는 가장 보편적인 기도 자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부분에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셋째, 서는 자세는 부활과 기쁨의 자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셨고, 우리도 그분을 통해 부활하여 일어섰습니다. 이런 의미 때문에 부활시기와 주일에 서서 기도하는 경우(부활 삼종기도 등)가 많습니다.

▶「앉는 자세」는 경청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복음 외의 성서를 봉독할 때나, 사제의 강론 때 바른 몸가짐으로 앉아서 경청합니다. 전례 중에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이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표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만큼 우리는 먼저 그 표징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파스카는 무슨 뜻이며 부활절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섭리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를 자기 집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이집트 땅의 맏아들이 살해되는 재앙을 면하게 되고 마침내 이집트를 탈출하게 됩니다(출애 12, 1-14 참조).

   하느님의 천사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지나가고 이집트의 맏아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때부터 파스카(Pascha: 지나가다, 통과하다, 건너뛰다. 라는 뜻)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과월절(過越節)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어린 양과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요한 1, 29.36 참조)은 과월절 오후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참된 해방, 즉 파스카로서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입니다. 

● 부활 대축일의 날짜는 어떻게 정해집니까? 그리고 알렐루야는 무슨 뜻이지요?

   부활대축일은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유대인들의 월력(月歷)으로 니산(Nissan)달 1월 14일에 지냈으나, 지금은 춘분이 지난 후 만월(滿月) 다음에 오는 첫 주일에 지냅니다. 이렇게 계산해서 결정되는 부활 주일은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있게 됩니다. 올해 2005년은 3월 20일이 춘분이고, 그 후 3월 24일이 만월(음력 2월 15일)이므로 그 다음 주일인 3월 27일이 부활 대축일이 되는 것입니다.

   알렐루야(Hallelujah)는 히브리말로 ❛야훼를 찬미하라❜는 뜻을 지닌 환호성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우리의 마음을 알렐루야의 환호성으로 대변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기간에는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습니다. 

● 사제가 입는 제의 색깔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사제가 미사 때 입는 제의는 전례시기와 미사 특성 등에 따라 색깔이 다릅니다. 그 이유는 거행되는 전례의 특성과 전례력에 따라 그리스도인 생활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백색】거룩하게 변모하신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 영광, 결백, 기쁨을 뜻하고, 부활과 성탄, 성모, 천사 축일 및 순교자가 아닌 성인 성녀 축일 등에 입습니다.【홍색】사랑과 피를 상징: 주님수난성지주일, 주님수난성금요일, 성령강림대축일, 주님의 수난 행사, 사도와 복음사가, 순교자 축일 등에 입습니다.【녹색】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상징: 연중 주일과 연중시기의 평일에 입습니다.【자색】통회와 보속을 상징: 대림, 사순시기에 입습니다.【흑색】죽음을 상징: 장례미사, 위령미사 때 입지만, 요즈음은 흑색 대신 백색을 입습니다. 백색을 입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차원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사 때 사제가 입는 제의색만 보아도 그 날 전례의 성격을 알 수 있으므로, 그 색깔을 보면서 그 날 전례에 합당한 마음 준비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 주일 미사 독서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말씀 전례가 강조됨으로써 미사 독서도 개혁하여 성서의 주요 부분을 주일에 다 듣도록 하기 위해 3년 주기(가해, 나해, 다해)로 배정하였습니다. 주일 미사 독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원 행적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과 어울리는 내용을 구약성서에서 택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할 것인가에 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서간에서 택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 업적을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 데 있습니다. 주일 미사를 위한 독서로 제1독서는 구약성서, 제2독서는 사도들의 서간, 제3독서는 복음을 봉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 말씀을 음미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잘 살 수 있도록, 주일 미사를 위한 3년 주기의 독서를 배정해 놓았으므로, 우리는 그 주일의 독서 부분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음미하면서 매일의 생활에서 활기를 얻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제대에 절은 왜 하나요?

   제대는 전례 거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요 중심이신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제대는? 주님의 식탁?(1고린 10, 21참조)입니다. 제대는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제직을 통하여 인간 구원과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는 데 필요한 희생 제사를 실현하는 식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심점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도 제대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전례 거행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제대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제대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미사 입당 때나 퇴장 때 제대에 대한 존경으로 제대 앞에 나아가 정중히 절을 합니다. 때로는 분향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음 봉독 전에도 제대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교우도 제대 앞을 지나갈 때면 깊이 고개 숙여 존경을 표시해야 합니다.  

● 성서 봉독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요?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서 봉독은 하느님이 독서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새롭게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 때에는 회중이 성서 구절을 눈으로 따라가며 읽거나 또는 독서자와 회중이 계응으로 주고받으며 읽는 것은 가능한 한 삼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부 개신교의 예배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전례에서 성서 봉독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독서자는 성서 본문을 봉독할 때 구두점을 따라 정확히 끊으면서 유창하게, 그러면서도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봉독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억양을 지나치게 붙이거나 때로는 음색을 바꾸어서 마치 연극하듯이 읽는 것은 전례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독서자는 주관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억양을 조심하면서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성서를 봉독해야 합니다. 성서를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자 자신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확신을 갖고 읽어야 합니다. 성서 봉독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과 사업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 증거로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객관성이 요구됩니다.

● '보편 지향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전례에 참여한 교우들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편 지향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우들이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미사 안에 새로 복구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교우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사람들로서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모든 산 이와 죽은 이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편 지향 기도는 세상 구원에 대한 사명을 지닌 공동체의 간청이기에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위한 폭넓은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편 지향 기도는 나중심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지평으로 눈을 돌리게 해 주고, 인류와 전체 교회의 거대한 원의에 대한 책임을 일깨워 줍니다. 보편 지향 기도는 모임의 공동 기도이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지향 순서는 모든 교회, 전 인류와 같은 보다 폭넓은 개념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시작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 '보편 지향 기도'의 내용은 어떤 지향으로 작성해야 합니까?

    보편 지향 기도의 지향은 여러 차원의 공동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이므로,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 즉 모든 교우, 교회 전체,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시야를 넓혀 전 인류, 즉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셋째 부분에서는 긴급하고 필요한 일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것은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위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면 됩니다. 넷째 부분에서는 우리 공동체, 예를 들어 본당이나 지역 공동체 또는 각종 단체 등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처럼 깊은 의미를 가진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는 데 있어, 많은 공동체가 이미 만들어진 기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문에 불과하기 때문에 각 공동체 실정에 맞게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 바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고 좋을 것입니다.

● 미사 때 성체를 높이 올려 보여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사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나서 들어 올려 교우들에게 보이는 예식을 성체 거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성찬 전례 때 이런 예식이 없었는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지면서 중세 이후에 도입되었습니다. 교우들이 이 순간에 주님의 현존인 성체를 경배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우들은 차츰 성체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성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관습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교황 비오 10세는 1907년에 성체를 보면서, 토마스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규정은 없어

졌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이때 기도하면 잘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이전부터 내려오는 습관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미사 중 "성체거양"때 여러 가지 기도를 바치느라 속으로 중얼중얼하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성체거양" 때의 올바른 자세는 오직 성체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모아 주님의 현존을 경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는 물도 못 마시나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기 위해 성체를 모시기 일정 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공복재(空腹齋) 또는 공심재(空心齋)라고 합니다. 구 교회법전에서는 영성체할 사람은 전날 자정부터 일체 음식이나 음료를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영성체 전 한 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사람들, 즉 병자, 노약자, 간병인 등에게는 공복재 시간을 영성체 전 15분으로 더욱더 축약시켰고, 중환자의 경우에는 면제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공복재 시간이 단축되었다 해서 공복재의 기본 정신이 약화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공복재를 지키는 정신보다 시간이라는 외적 규정에만 너무 얽매인다면 공복재를 지키는 의미가 퇴색됩니다. 또 공복재 시간 규정이 영성체 전 한 시간이라 하여 미사 시작 직전까지 음식물을 섭취한다면, 공복재를 잘 지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미사 때 성체는 어떻게 영해야 합니까?

   성체를 영할 때에는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주교회의에서, 서서 손으로 영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두 손을 바르게 편 상태에서 왼손바닥이 위로 오게 하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칩니다. 그래서 사제가 신자의 왼손바닥 위에 성체를 올려주면 오른손으로 성체를 영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신자들이 성체를 만지지 못하게 한 규정에 따라 사제가 직접 영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손으로 영하도록 했기 때문에 예전의 방법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전례 행위에 있어 교회가 공적으로 규정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전례 행위는 공동체의 공적인 행위이기에 한편으로 통일성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신이 좋다 하더라도 교회에서 정한 규정을 따르지 않고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일방적인 규정만을 고집한다면 잘못되고 이상한 신앙생활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 신자들은 왜 미사 때마다 양형 영성체를 하지 않나요?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을 양형 영성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최후만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처음부터 미사 때에 양형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12세기부터 여러 가지 사목상의 문제와 주님께서 성체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신다는 신학에 근거하여 성체만 영하게 되었습니다.(트리엔트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 안에 온전히 계시며 성혈을 영하는 것이 구원에 절대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선언함).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양형 영성체의 규정을 개방하여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서품미사, 수도자 서원미사, 세례 미사 등에서 성사를 받거나 서원을 한 당사자는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전례헌장 55항). 그리고 1970년 <미사경본 지침>에서는 이를 더욱 확대시켜 여러 특별한 경우에 양형 영성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미사 때마다 양형 영성체를 하지 않고 성체만을 영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 모시는 것이며,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는 데 아무런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봉성체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봉성체(奉聖體)"란 공동체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 특히 병자들에게 성체를 모셔 가서 영해 주는 "병자 영성체"를 말합니다. 봉성체의 목적은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이 영성체를 통해 스스로 주님의 제사와 교회 공동체에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형제적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봉성체의 대상은 단순히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니라, 병중에 있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들에게 해당됩니다.

   병자의 가족이나 병자를 돌보는 사람은 그 사실을 본당 신부에게 미리 알려 병자가 적절한 시기에 봉성체와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병자가 성체를 잘 모실 수 있도록 합당한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봉성체 준비는 병자의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작은 상을 마련하여 깨끗한 보를 씌운 다음 그 위에 십자고상, 초와 촛대를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봉성체 대상자의 마음 준비입니다. 즉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한 내적 외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전례 때의 침묵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침묵", 그것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 자세입니다. 우리가 소음에 둘러싸일 때 하느님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례 중의 침묵은 아주 소중한 순간입니다. 고요함 중에 기다리는 것, 이것은 어떤 전례 행위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순간의 침묵, 너무나 부드럽고 소곤대는 소리라 정신을 집중하고 침묵 중에 기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전례 때 더 많은 침묵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감미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침묵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가장 적극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그 어떤 동작, 행위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행위입니다. 이같이 아름다운 침묵을 우리는 전례 중에, 또는 우리 삶 가운데 얼마나 실천하고 있습니까? 행여 우리 마음은 침묵으로 비워진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신자로서의 나의 삶 안에서 하루 중 얼마만큼의 시간을 하느님 말씀을 듣는데 바치고 있습니까?


● 미사는 꼭 한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건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모든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또 전례를 개정함으로써 예전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처럼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독서 경향도, 많은 양의 문학작품보다는 짧은 우화나 동화 또는 만화를 더 좋아하는 쪽으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빨리 해치우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전례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례로, 마치 미사 시간마저도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제나 신자나 할 것 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미사를 해치우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 조류를 거슬러 교회는 거룩한 침묵을 외칩니다.  잠시 멈추어라. 하던 일을 멈추어라.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너 자신을 반성하고,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네 삶을 되씹어 보아라!?

 

● 말로만 외치는"아멘"이 아니라, 확신에 찬 믿음으로 "아멘"을 외쳐야!

    우리는 미사 중에 사제가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Amen) 하고 말함으로써 사제의 기도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제가 드리는 기도에 "아멘"하고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사제의 기도를 잘 듣고,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사제가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미사 때의 "아멘"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사제가 교회의 장엄한 기도인 감사기도("그리스도를 통하여 …")를 마친 후에 "아멘"하고 응답하는 부분입니다. 이때의 "아멘"은, 사제가 백성을 대신해서 드린 찬미와 감사의 기도에 신자들도 동참한다는 것을 드러내므로 보통 성대하게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아멘하고 대답하는 부분입니다. 이 순간의 "아멘"은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따라서 성체를 영할 때나 기도할 때에 확신에 찬 큰 소리로 "아멘"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요?

● 어떠한 몸가짐과 자세로 전례에 임해야 할까요.

    우리의 모든 삶에는 예의범절이 존재하고 또 거기에 따르는 몸가짐도 정해져 있습니다. 전례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복장을 생각해 봅시다. 옷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미사 때 입고 가는 옷에 드러나는 우리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거울 앞에 서서 어느 정도의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둘째, 성당이나 기도하는 장소에 도착하는 시간입니다.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또는 이미 미사가 어느 정도 시작된 다음에나 들어가는 사람, 미사 시작 직전까지 성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소란을 떨다가 사제가 입당할 때에나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셋째, 전례에 알맞은 목소리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성과 마음이 담긴 목소리를 말합니다. 사제의 기도에 확신에 찬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아멘 하고 응답한다면 하느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번 한 주간에는 올바른 몸가짐과 그에 걸맞은 마음을 가지고 전례에 참여해 봅시다. 확실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미사 때 행하는 동작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말과 몸짓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직접 전하기가 힘듦을 깨달은 인류는 끊임없이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언어적 표현과 행위적 표현(몸짓)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 습관과 문화가 온 인류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인사하는 방식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를 숙이는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볼에 입 맞추거나 악수를 함으로써 반가움을 드러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몸짓과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때의 인사 방식과 지금의 인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동작들도 하나하나에 그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런 의미를 모른 채 그저 습관적으로 따라만 한다면 기계적인 움직임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전례에 임한다면 미사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재미가 있겠죠? 미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봅시다.


●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신자들이 성호(聖號)를 긋는 동작을 하였다는 것은 2세기말의 교부 떼르뚤리아노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동작을 할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 일상생활의 모든 동작마다 우리는 십자가 표시(성호)를 긋는다." 처음에는 그저 이마에만 엄지손가락으로 십자를 긋는 양식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을 반박하기 위하여 삼위일체를 상징하고자 이마에서 심장으로 그리고 가슴 위 부분을 긋는 현대식의 성호 긋는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삼위일체 기도가 첨가되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항상 성호를 긋습니다. 또한 성당에 들어설 때와 미사 시작 때... 이렇게 성호를 긋는 행위는 바로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때문에 바른 자세로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성호를 긋도록 해야겠습니다.


● 서 있는 동작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일어섬은 비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존경과 공경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갖는 자유를,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임을,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때문에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주일과 부활시기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예배를 보도록 의무화시켰던 것입니다.

   서 있는 동작은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존경심을 가리킵니다. 알렐루야와 더불어 시작되는 복음 낭독 때 우리 모두가 일어서는 것은 바로 사제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때문에 사제가 성당에 입당할 때부터 미사가 끝날 때까지 사제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앉아 있는 자세가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처음으로 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석할 때 그 느낌은 어떨까요? 가장 생소하고 멋쩍은 일은'앉았다 섰다'하는 동작일 것입니다. 미사 전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미사 시간이 지루할 것이고 또한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미사 전례 안에서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편히 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귀담아듣고 묵상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제자들이 그분 주위에 모여앉아 말씀을 경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앉아 있는 자세는 또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서와 화답송, 강론 중에, 그리고 봉헌과 영성체 후에도 앉습니다. 그것은 또한 조용히 기다리고 기도하며 묵상하기 좋은 태도입니다. 앉아서 듣는 자세는 단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열어놓으며, 또한 말씀을 실천하고 복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 미사 중에 무릎을 꿇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요?

   무릎을 꿇는 것은 최대의 겸손, 존경, 속죄의 자세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두 발로 서서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자신의 비천함을 드러내는 겸손의 자세인 것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현행 미사 전례 중에 무릎을 꿇는 부분은 축성 기원(성령 청원) 직후부터 '신앙의 신비여'직전까지, 곧 사제가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바치는 동안 경건하게 무릎을 꿇습니다. 이 부분은 주님 수난이 재현되고 성체 성혈 축성이 이루어지는 미사의 핵심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릎 틀이 없거나 무릎을 꿇기가 불편한 곳에서는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시도다.'부터 감사기도 끝까지 무릎을 꿇는 관습이 있는 곳에서는 그 관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미사 총지침』 43항). 미사 전례 중에는 각 예식에 지정된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하지 않거나 규정에도 없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신앙의 표현인 예식의 의미를 흐리게 합니다.

● 미사 중에 개인의 취향대로 자세나 동작을 취해도 되는가요?

   미사 전례 중에는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지정된 동작이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제각기 다른 동작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축제의 노래이며 찬미가인 대영광송은 앉지 않고 서서 부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시에 부르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외거나 강생 신비 부분을 욀 때는 사제나 교우들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신자들은 미사 중에 너무 자주 고개를 숙이고 인사 동작을 취하는데,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양팔을 펼치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공동체를 대변하는 주례 사제의 자세이지, 신자들의 자세는 아닙니다(특히 '주님의 기도'에서 유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동작과 자세는 민족 문화나 관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토착화 대상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양식 인사 형식인 제대나 복음서에 입맞춤, 한쪽 무릎을 굽히는 무릎 절 등을 고개를 숙이는 절로 바꿨습니다.


● 「전례주년」이란 무엇인가요?

    하느님의 창조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 역사를 믿고 가르치는 교회는 1년이라는 사회의 일반 주기를 따르고는 있지만, 이러한 일반 주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부여하면서, 교회 나름대로 여러 항목과 주제별로 별도의 고유한 주기를 정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고유의 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한 것을「전례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례주년을 시기, 달, 날짜순으로 종합하여 적어 놓은 교회 달력을「전례력」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1년을 한 주기로 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는 데, 그리스도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고 그의 부활로 완성되기 때문에 전례주년도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성탄은 부활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부활이 교회 전례의 중심이요,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주년은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 성인들의 축일이 들어 있습니다.

● 주일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주일(主日)은 곧 주님의 날입니다. 주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데 적지 않은 방해 요소로 작용합니다. 특히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됨에 따라 주말을 이용한 휴가나 여가에 대한 관심이 커짐으로써 주일의 의미가 크게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파스카 신비의 거행으로서의 주일의 의미를 명백히 부각시켰습니다. 이 날에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주 예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하여야 한다.(전례헌장, 106항).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주님의 날을 기념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바로 알아 주일 미사 전례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주일이 단순히 휴식만을 취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즐거운 휴식이 되도록 한다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