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사제의 길은 쉽지 않았다

더 창공 2009. 7. 20. 14:34

사제의 길은 쉽지 않았다 - 김영배 신부 -

 

찌르릉 찌르릉 전화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천주교회 김 신붑니다."

"거기가 성당이죠?"

"네, 그렇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여보쇼! 오늘 거기서 결혼식이 있었죠?"

"네, 오전 11시에 있었는데요."

"그런데 밤 10시가 되도록 우리 딸이 돌아오지 않으니 어떻게 된 겁니까?

결혼식에 노래 부르러 간다고 나갔는데 아직도 안 돌아오는데, 당신은 성당에 앉아서 뭘 하는 겁니까?"

"저, 누구를 찾으시는 모르지만 미사 때 성가를 부른 사람들은 모두

12시에 돌아갔는데요."

"그래요? 그 결혼식한 집이 어딥니까?"

거친 목소리에 약간 겁을 먹으며 잔치집을 친절히 가르쳐 주고,공손히 전화를 끊었다.

'원.. 별사람 다있다' 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30분쯤 지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급히 자리옷을 벗어 팽개치고는 정장을 하고 나가 밤중 손님을 맞았다.

"당신이 신부요?"

"네, 제가 신붑니다."

"당신 나 좀 봅시다."

"들어 오시지요."

"들어갈 것 없이 당신이 이리 좀 나오쇼!"

또 한 번 겁을 먹으면서 어두컴컴한 성당 앞까지 따라갔다. 앞장서서 가던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서며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성당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성당에 노래를 하러 간 딸이 밤이 늦어도 안 돌아오길래 아까 전화를 하고서 결혼식집에 찾아 갔었어요. 남자 여자가 떼를 지어 시시덕거리면서 밤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이게 바로 교회에서 가르친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열두 시에 모두 보내곤 확인을 안 해서 몰랐습니다."

"죄송하다면 다요? 사람을 죽여 놓고도 죄송하다고만 하면 됩니까?" 교회가 젊은애들을 이렇게 가르치고도 큰소리칩니까?"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뭐 이런 무책임한 신부가 있어?"

주먹이 날아들 기세다. 나도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혀를 깨물었다.

'자기 딸은 자기가 가르치지... 이게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하마터면 이렇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옆에서 벌벌 떨고 서 있는 성가대원 딸을 위해서 참기로 했다.

"난 배운게 없어 운전이나 해 먹고 사는 놈이지만 이런 꼴은 못 봐요. 이눔의 기집애, 앞으로 교회에 간다는 말만 해봐라. 때려 죽일 테니, 빨리 가지 못해!"

남자는 옆에 서 있는 자기 딸을 욱박질렀다. 너무 기가 죽어서 말도 잘 못하는 이 죄수(?)는 떨면서 아빠를 따라가다가, 내 앞에 고개를 떨구고 한 마디 했다.

"신부님, 정말 죄송해요."

"이눔의 기집애, 어서 오지 못해! 뭐가 죄송해? 앞으로 교회만 나왔다 봐라,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테니..."

남자는 딸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갔다.

함께 왔던 그 부인이 내게 공손히 사과를 했다.

"죄송 합니다. 제 딸년 때문에 괜히 신부님께 실례를 범하게 되었군요."

"당신은 거기서 뭘해? 빨리 오지 못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우지직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고 있음을 알았다. 성당 창문에서 빨간 성체불이 새어나온다.

'예수님, 끝까지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당신이 아닙니까? 사제는 바로 제 2의 그리스도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죕니까? 저더러 미사에 나오는 모든 교우들을 모두 집에까지 잘 데려다 앉혀놓고 오라는 말씀은 안 하시겠죠? 그런데 이게 무슨 꼴입니까? 당신 앞에서 당신의 사제가 이런 봉변을 당해도 당신은 그저 보고만 있으십니까?'

'야! 이놈아, 그까짓 것을 가지고 뭘 그래. 아직 멀었어! 너는 아직 십자가에 못박히지는 않았잖아. 아직 멀었어! 사제의 길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아? 시골 할머니가 품 속에 깊이 숨겨 가지고 와서 몰래 주머니에 넣어주는 담배를 받아 피울 때만 사제의 보람을 찾으려고 하니? 아직 멀었다!'

쓴 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오니 또 전화 벨이 울렸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미소를 띠고 수화기를 잡았다.

"여보세요, 천주 교회 김 신붑니다."

"당신은 교회에 앉아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사람이오?"

[아이쿠, 이 양반 아직도 확 안 풀렸구나]

"저로서는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 할 수 없군요. 앞으로 다시는..."

말이 채 끊나기도 전에 전화가 툭 끊겼다.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5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 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

이렇게 자정이 될 때까지 네 번이나 전화가 왔다.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성당에 나오고 있는 그 무죄한 성가대원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끝까지 참아주자. 그러나 정말 참기 어려운 악몽 같은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 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나오니 또 전화가 왔다.

"여보쇼! 내 아무리 생각해도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소, 당신이 신부라면 아이들을 선도해야지, 어디 그렇게 가르칩니까?" 시종 일관 같은 말이다.

그 날 아침에도 세 번 전화가 왔다.

[사제의 길이다] 하고 속도 없이 참았다.

그 다음 주일에는 예상대로 그 성가대원을 만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주일이 되는 날, 성당 마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너, 왜 왔어, 아버지한데 걱정 들으려고? 빨리 집으로 가거라. 집에 가서 혼자 공소 예절이라도 하면 돼. 빨리 돌아가!" 얼굴도 들지 못한 채 말했다.

"저도 너무 챙피하고 뵐 면목도 없어 한동안 집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두 분이서 서둘러서 성가책도 찾아 주시고 미사보도 찾아 주시면서 빨리 성당에 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왔어요. 신부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더 잘 할게요."

"고맙다. 걱정말고 열심히 나와."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는 승리의 기쁨에 젖어 하느님께 다시한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날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

주먹보다는 겸손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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