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사제의 길 위에서

더 창공 2009. 7. 20. 14:34

사제의 길 위에서 - 윤 클레멘트 신부 -

 

1.

우리 살아가는 날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는

 

빛, 어둠이 있다.

기쁨, 슬픔이 있다.

행복, 고통이 있다.

즐거움, 아픔이 있다.

그리고 봉헌, 사랑도 있다.

 

하루를 살아도

잘 살아가야 하고,

하룻길을 걸어도

잘 걸어야 하는데 ...

 

살고 걸어가는 삶과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일들에서

우리는 여러 삶과 일들을 만난다.

 

어제는 빛나는 산등성이를 달려도

오늘은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간다.

어제는 행복과 기쁨의 강이어도

오늘은 시련과 고통의 냇물이다 ...

 

하늘을 향하여 우러르며

땅위의 사람들 함께 걷는 길인데,

삶이 그리 시련이기도 하다.

길이 그리 아프기도 하다.

 

백년 천년을 산다 해도

참으로 잘 살지 않고,

진실로 행복하지 않다면,

이 길을 살고 걸어가는

삶의 길과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 인간, 사제, 봉사자로

살고 걸어가는 이 길 위에서

삶과 길의 구도자(求道者)로

나는 오늘도 여기쯤 길을 걸어간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 함께

진리를 살고 바랄 수 있을까?

어느 날 어디 메에서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일까?

 

날마다 봉헌 드리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감사와 절실함이 다가서 오는 이 길,

아픔과 그리움도 맺혀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여기에서 걷고 있다.

 

어제는 그 길 위에서,

오늘은 이 길 위로

현존하시고 다가오시는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사랑하는 하느님이심을 ...

 

여기에 한 가엾은

이 인간 사제 봉사자를

어여삐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구원하소서.

2.

조금은 길을 걸어왔다.

약간은 세월의 길들 안에서

사제의 길을 걸어왔다.

 

한 작고 미약한

인간의 길, 사제의 길로

생의 길, 삶의 길을

걸어왔다.

 

어느덧 스물두해이다.

엊그제 제단앞에 엎드려

부복하며 서원 드렸는데,

얼마전 제단앞에 나아가

무릎꿇고 약속말씀 했는데 ...

 

벌써 스물두해이다.

한 사제로서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사제의 길을 가는 것이 ...

 

어느덧 인생으로서도

공자님 말씀에 의하면,

지천명(知天命)의 인생(人生)이고 ...

 

마치도 소년처럼,

마냥 젊을듯 했는데,

어느덧 세월속의 인생도

많은 것들이 변하여지게 했다.

 

내적 외적인 태도와 모습들,

내안의 밖으로의 삶의 자세와 모양들이,

참 많이도 변해갔다.

그토록 변하여갔다 ...

 

부정(否定)할 수 없는

내 안의 태도와 모습들 ...

많이도 겸허와 순박함들을 잃어갔다.

적지 않게 진실과 신실함들이 멀어져갔다.

 

밖으로 드러나는

거칠고 단정치 않은 태도와 모습들 만큼이나

마음과 영혼의 순수와 첫마음들도 사라져갔다.

 

일이라는 이름으로,

소임과 임무라는 이름으로

비움과 겸손은 어느덧 없어지고,

판단과 욕망의 어두움 그늘이

마음과 삶속 한 가운데에서

자리를 잡아 머물곤 했다.

 

시편의 말씀처럼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바람한번 불면 다 스러지고 마는 것을 ...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이고,

그나마 눈물과 한숨으로 지나가 버리는 것인데 ...’

 

한 인간으로서,

겸손(謙遜)과 진실(眞實)을 다하고

순박(淳朴)과 신실(信實)의 삶으로,

세월이 갈수록 덕(德)과 도(道)를 살아가야 하는데 ...

 

한 사제로서,

빛과 진리를 구하며

침묵(沈黙)과 기도(祈禱)의 행업(行業)으로,

일과 생(生)의 수행(修行)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데 ...

 

세월의 선상에서,

일들의 행함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한 인간 사제로서의 어둠과 그늘이

짙고 길게 드리우게 했다.

 

정말이지 잘 살고 싶었고,

진정으로 착한 인간, 사제이고 싶었는데 ...

 

적지않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참말이지 좋은 인간, 사제이기를 바랬는데 ...

 

착한 시골본당 사제,

성인 사제로의 꿈을 주고 받으면서

젊은 날의 학생시절을 지내기도 했는데 ...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태도와 모습으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디에서 새롭게 추구할 것인가?

벌써 세월도 적지않게 흘러갔고

어느덧 인생도 이만큼이나 지나왔는데,

이대로 이렇게 살고 흘러갈 것인가?

이같이 이토록 세월속에 묻힐 것인가?

 

지금은 다시 일어나야 할 때,

이제는 다시 길을 걸어가야 할 때,

지금이라도 새롭게 길을 걷고,

여기에서라도 새롭게 생을 이루어갈 때임을 ...

 

지금 여기에서의

한 작은 몸 맘 영혼,

한 송구한 인간 사제 봉사자로서 ...

 

지금의 내 모습과 삶이

누추함 초라함이어도,

퇴락함 슬픔이 많아도,

아프고 헤어진 채 누벼짐 가득해도,

다시 일어나 믿고 희망하며 기도하면서

길을 걸어가야 하리 ...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이지 않고

땅을 굽어보아 안타까움이지 않기를

그만큼 바라며 소망했는데,

염원하며 길을 걷고자 했었는데 ...

 

그토록 쌓여온

죄, 어둠, 그늘,

고통, 아픔, 시련,

일들, 사람, 자아 ...

 

어느덧 길들 위에서

빛, 진리, 사랑,

꿈, 희망, 일치,

기쁨, 생명, 소망 ...

많이 힘들고 지치기도 ...

 

아, 아득히 멀어지는

인생의 꿈이여,

세월의 질곡(桎梏)이여,

한 인간 사제의 약한 존재성이여,

삶의 골짜기들이여 ...

 

통렬(痛烈)하는 내 작은 생의

수 많아온 어둡고 그늘진

육신과 영혼의 모양 모습들이여 ...

 

다시 일어나야 하리.

새롭게 다시 일어나

길을 걸어가야 하리.

지금 여기에서,

여기에서 지금 ...

 

가엾고 아프게

일하고 살기도 했던

그토록 허물어리고 미약한

한 인간, 사제로서의 삶과 길을 ...

 

이제 다시 일어나

새로이 하늘을 우러르고

다시금 땅을 바라보면서,

살고 일하며 길을 가야 하리라 ...

 

이제는 조금

침묵, 헌신봉사, 기도수행

겸허, 묵묵, 신실의 삶 안에서,

비움, 버림, 떠남의 영성

들음, 수용, 봉헌의 생으로,

다시 새롭게 길을

떠나가야 하리라 ...

 

한 몸 맘 영혼으로,

한 인간 사제 봉사자로 ...

 

하늘 아래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드리고 봉헌해 가면서,

말없고 꿋꿋하게 새로웁게

길을 떠나가야 하리라.

 

부당하고 송구한

사제의 길 위에서 ...

 

아, 생이여

빛과 진리여,

생명과 은총이여,

꿈과 사랑이여 ...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디쯤에,

구도(求道)와 진리(眞理)의 길이 열릴까?

빛과 은총(恩寵)의 길을 찾을까?

 

지금은 다시

일어나 하늘을 보며,

이제는 새롭게

땅을 바라볼 때임을 ...

 

새로운 몸 맘 영혼,

거듭나는 인간 사제 봉사자로 ...

 

하느님

나의 하느님

우리의 하느님,

 

이 죄인을

사하시고 용서(容恕)하소서.

자비를 베푸시고 구원(救援)하소서.

 

※ 위 묵상시는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전주 문정성당의 주임신부)가

전주 교구청 홈페이지 영성의 방을 운영하며 올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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