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천 당

더 창공 2010. 5. 4. 13:28

천 당 (이중섭 신부)

   

우선, 천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당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나타낸다. 즉 천당은 현재 세상과 다른 상태를 뜻하고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 우리가 있게 될 것이라는 인간의 희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물론 천당은 공간이나 장소가 아니지만 공간 개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구원의 대상은 인간인데 인간은 부활한 몸으로 새로워진 우주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천당이란 말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천당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전인적인 구원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구원받을 때 영혼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당은 결코 영혼만이 행복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 장례 예식서에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나오지만, 라틴어 원문의 장례 예식서에는 영혼(anima)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로마 장례 예식서는 영혼과 육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때문에 육체와 분리된 영혼만이 천당에 간다는 통념을 애써 피하려 한 것 같다.

   

특별히 천당이라는 말은 인간의 희망을 잘 드러낸다. 죽은 다음에 하느님과 영원히 떨어져 사는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하느님을 안 믿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지옥보다는 천당에 가고 싶어 한다. 결국 천당은 인간이 가야할 최후 목적지로 생각되는 셈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예수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천당은 없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덕분에 우리가 천당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없다면 천당도 없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천당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구약성서에는 후세에 대한 계시가 결여돼 있다. 구약성서는 후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고 현세의 삶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려는 열망, 하느님과 화해하려는 염원, 하느님의 나라를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 하느님의 영광을 받들어 모시려는 노력 등이 종종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결국 신약성서에 와서 후세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연결되었다. 신약성서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을 곧 영생이라고 한다. "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 17, 3). 신약성서는 '하느님을 안다' 혹은 '하느님을 뵙는다.' 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고린토 전서 13장 12절의 말씀처럼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옵는 지복직관(至福直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처럼 신약성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워진 관계를 하느님을 직접 뵈옵는 지복직관으로 생각한다. 또한 영생을 묘사하기 위해서 혼인과 식사라는 표상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영생이란 함께 기쁨을 누리는 인격적인 행복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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