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묵상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삶의 완성

더 창공 2010. 7. 15. 10:27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삶의 완성

 

1. 세기말 잘못된 종말론 확산

언젠가 외신을 통해 '종말'이라는 검색어로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무려 2만 300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인류 역사상 세상 종말을 외쳐온 집단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특히 새 천년 기를 앞두고 극에 달한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정확한 종말의 해를 여섯 번이나 증언했지만 다 틀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우리나라도 종말의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려 올라감)가 발생한다는 일부개신교 교단의 주장을 비롯해 다양한 시한부 종말 설은 일반인들에게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들이 빚은 사회적 울의 또한 매우 크다. 성경의 예언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임의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다시 새 천년이 와도 이 같은 종말 주장은 언제고 또다시 불거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종말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서 종말이란 말 그대로 끝판, 곧 파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인간의 종말은 죽음이고, 세계의 종말은 우주의 끝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끝이고 또 우주 세계는 종말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에 대해 죽음, 곧 종말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 곧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이 부활 신앙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종말과 사후 세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나는 개별 인간이 죽은 후에 겪게 되는 운명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종말 이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죽은 후에 세 가지 다른 운명을 지닌다. 죽어서 영혼과 육신이 갈라지면, 육신은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우선 현세에서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훌륭한 삶을 산 의인들은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같이 산다.(천국)

이에 비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했지만 소죄 중에 죽은 사람은 그 지은 죄를 기워 갚을 때까지 정화의 상태를 겪는다.(연옥) 그러나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대죄를 지은 후 고해 성사를 받지 않고 죽은 사람은 그 영혼이 끝없이 벌을 받는다.(지옥)

개별 인간은 이렇게 죽어서 심판(사심판)을 받아 각자의 처지가 정해지지만, 세상 종말이 오면 죽었던 모든 사람이 부활해 다시 최후의 심판(공심판)을 받는다. 그때 의인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세상 종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하여 각 사람을 그 행실에 따라서 심판 하겠지만, 누구도 종말의 시기와 방법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세상 종말 이후의 세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은 이 천국과 연옥, 지옥을 인간이 사후에 심판을 받고 돌아가는 어떤 장소 곧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떤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죽어서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인간은 하느님을 만나면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가 완전히 발가벗겨짐을 체험한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체험한다. 이것이 바로 심판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옥은 바로 와전하지 못한 인간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에는 부족함을 통감하며 부끄러움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정화의 과정을 뜻한다. 생전에 지은 잘못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회한,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가 바로 연옥이라는 것이다. 연옥의 상태에서 인간은 이제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고 죄를 뉘우치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기대어 하느님과의 일치, 즉 천국을 희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천국, 곧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 복락을 누리는 어떤 장소가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이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복직관이라고 불러왔다.

 

2. 공간적 개념 아닌 존재형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주례 일반 알현에서 이런 천국의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천국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구름 위에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인격적 관계이며, 현세에서도 성찬례와 자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다."

즉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는 순간에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체험하는데 이것이 천국이다. 이런 천국은 성체성사 안에서의 일치를 통해서, 그리고 이웃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을 통해서, 현세에서도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지옥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이웃을 거부한 인간이 절망과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흔히 지옥의 형벌은 불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거부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상태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지옥 역시 현세에서도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 '생지옥' 같다느니 '아비규환'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런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 과연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선택해 자초한 결과라는 점에서 지옥이 실제로 존재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개개인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 세계의 종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신학자들은 이와 관련, 역사의 종말은 파국이 아니라 역사의 완성, 세계의 궁극적인 완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것은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 구원의 하느님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3. 천국과 지옥은 현세에서 시작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지옥이나 종말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옥 형벌이나 종말의 심판에 관한 성경의 묘사들은 현실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거부하고 이기심의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경고이며, 회개의 촉구로 이해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이 내세의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라고 보면, 천국과 지옥은 이미 현세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결정적으로 보여 지는 종말은 내세의 사건만이 아니라 이미 현세에서 시작된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건이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종말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교인은 내세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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