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자꾸 흐려지는 눈으로 희제의 사진을 봅니다.

더 창공 2007. 8. 4. 12:02
 

자꾸 흐려지는 눈으로 희제의 사진을 봅니다.


나를 닮은 저 눈동자, 코 그리고 입,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절망을 가까스로 누릅니다.

희망을 잡고 싶지만, 그것은 아득히 멀고 복수가 차기 시작하고

오른쪽 어깨와 목 뒷덜미에도 물이 차서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점점 불편해지는 오른손, 뼈라는 뼈들이 모두 질러대는 아우성, 아직도 전 이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몸의 3분의 2를 암석처럼 단단히 굳게 만든 암세포들 때문에 뒤척일 수조차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옵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통증. 진통제 주사를 다시 맞습니다. 감쪽같은 평온, 이 속임수. 그러나 통증이 심해지면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갈등하고 지친 저는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살이 짓무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워집니다, 신이 내린 이 형벌이.

무심히 손깍지를 꼈다가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키 160센티미터에 몸무게 33킬로그램, 너무 야위어 제가 낀 손깍지에 손가락이 부서지는 줄 알았습니다.



희제에게 보낸 편지가 방송되고 여성시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보내주신 꽃바구니가 병실을 환히 밝혔고 조카와 희제에게 문화상품권을 선물해서 근사한 숙모와 엄마가 될 수 있었고 그이도 모처럼 활짝 웃으며 “좋은 일이 있는 걸 보니 곧 나을 수 있을 거야.”하며 제게 용기를 줍니다. 또 너무 감사한 것은 십 수 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친구와 연락이 닿아 친구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기쁜 중에 며칠이 지났습니다.

병실 창 밖 봄 햇살이 너무 눈부셨습니다. 너무 눈부셔 슬픈 날, 우르르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들의 뽀얗게 화장한 얼굴이 봄 햇살보다 더 화사했고 웃음은 더 빛이 났습니다. 저는 종양이 가슴과 목을 내리 누르는 통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억지로 웃으며 그녀들의 이야기에 동참하며 다시 몰려오는 통증을 가까스로 참아냈습니다. 그녀들이 돌아가고 텅 빈 병실, 저는 또 병실 천장만 보며 남편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립니다. 오늘따라 그이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집니다.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납니다.



그이는 그제도 입고, 어제도 입었던 옷을 입고 마치 물주기를 잊어버린 화분의 화초처럼 지친 얼굴로 병실을 들어설 것입니다. 일상을 잃어버린 그이의 모습에 저는 또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그이를 위해서도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사람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무시무시한 통증은 저를 무너뜨립니다. 통증을 잊어보려고 노래를 불러봅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제대로 된 노래가 아니었지만,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건강했던 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들, 유난히 양희은씨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게 직접 전화를 주셨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겨우 네, 네 대답하며 눈물만 흘렸었습니다. ‘한계령’과 ‘찔레꽃 피면’을 부르는데, 그 고운 음이 나오질 않아 또 답답해 가슴을 칩니다.

 ‘살아야지’, 다시 다짐합니다.



신께서는 능히 제가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에 시험하기 위해서 주신 거라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이겨내야지 용기를 냅니다. 막 희제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요즘 희제가 많이 마음 상해한다고, 오늘도 엄마와 같이 가는 캠프가 있어 설명했더니, 울면서 “우리 엄만 아픈데요.” 하더랍니다. 엄마가 몸이 좋아지면 희제의 표정도 밝고 행동도 활발해지고 엄마가 힘들어하면 희제도 우울해지고 여느 때와 달라진다는 선생님 말씀에 주먹만 한 눈물이 목을 치밀고 올라옵니다.

아! 저만 생각한다면 이 세상 아무 미련이 없지만, 너무 고통스러우면 포기하고도 싶지만, 희제는 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습니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저는 죽음이 두려워 운 것이 아니라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에 가슴을 치며 통곡 했더랬습니다.

어쩌면 신께서는 제 목숨을 더 이어 주시려고 아이를 제게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힘을 내겠습니다. 너무 늦게 여성시대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드리는 것은 아닌지, 여성시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세상을 향해 아무 할 말이 없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슴 속 할 말이 봇물 터지듯 터져 옵니다.

점점 말을 듣지 않는 오른팔,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여성시대에 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통증이 많이 줄었습니다. 멀리 대구에서 방송을 듣고 전화주신 애청자께도 감사드리고 두 분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투병할 때와 근래에 쓴 시 몇 편을 보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가슴에 일었습니다. 나만이 겪는 일도 아닌 일, 이제는 통증이 올 때마다 모든 환자들에게 통증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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