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성령

더 창공 2008. 4. 29. 15:52
 

성령

  삼위일체의 제3위. 〈사도행전〉에는 성령이 임한 많은 사례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병 고침·예언·귀신축출·방언 등은 특별히 성령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야훼의 영에 대한 〈구약성서〉의 다양한 언급이 성령 론의 선구를 이룬다고 생각해왔다. 히브리어 루아흐(ruaḥ)는 보통 '영'으로 번역되며, 하느님이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피조물을 창조한 것에 대해서나 피조물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는 활동에 대해 언급한 본문들에 나올 때가 많다. 이 용어는 특히 예언자의 말이나 메시아적 대망과 관련될 때가 많다. 그러나 성서의 유대교에는 독립된 신적 인격에 대한 명시적인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서〉도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또 다른 협조자 또는 중보자가 올 것이라는 〈요한의 복음서〉의 약속만이 이와 같은 신앙을 암시할 뿐이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동등한 본질을 지닌 특별한 신적 인격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였다. 그 후 성령의 신성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잇는 끈이나 유대 혹은 상호간의 사랑으로 보았다.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통해서 완전히 연합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령과 삼위일체의 다른 2위격의 관계에 대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해온 반면, 동방정교회는 성자를 통해 성부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사변보다는 교회의 성사생활에서 성령을 더 깊이 체험해왔다. 사도시대 이래로 세례 의식문은 삼위일체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견진성사는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에서 성사로 인정하지 않지만 성령이 교회에서 하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 동방정교회는 에피클레시스(성령 강림을 비는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이 예배를 드리는 회중, 성찬의 빵, 포도주에 강림하는 역할을 강조해왔다. 교회사 초기부터 제도적인 교회에 자유, 적극적인 사랑, 활력 등이 결여되었다고 불평한 많은 집단은 성령이 계속해서 부어지기를 간구했다. 이러한 운동 가운데 하나가 20세기에 일어난 오순절운동이다.


 삼위일체

  믿을 교리로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신의 세 위격으로 되어 있다는 삼위일체를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성신강림 대축일 후 첫 번째 일요일에 지켜진다. 4세기경 삼위일체 이단설을 주장하던 아리우스파에 대한 교회의 반박에 그 기원이 있으며, 리에즈의 주교 스테파노(재위:903-920)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몇몇 지역에서는 대림절 직전의 일요일에 기념되기도 하였다. 특별히 영국에서 널리 지켜졌는데 이는, 성심강림 대축일 후 첫 일요일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축성된 성 토마스 베케트(1118-1170)가 바로 그 날을 영국에서 삼위일체를 기념하는 축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34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이날이 교회에 도입되어, 1910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대축일로 선포되었고,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의무적으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전례문은, 프랑스의 어떤 지방에서 작성된 것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334년에 비로소 교황청에 의해 인가되었다.

  삼위일체 대축일은, 유일하신 하느님은 3위,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에서 유래하였다. 하느님의 유일한 생명이 이 삼위에서 전개된다. 성부는 자신 안에서 자기와 본질이 같은 영원의 '말씀'이신 성자를 낳고 이 2위에서 창조되지 아니한 영원한 사랑이신 성령이 발생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본질의 일체성은 알 수 있으나 3개의 하느님의 위격의 차이는 파악할 수 없으며 다만 신앙으로써만 인간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생명의 신비를 인정해야 한다. 바로 이 삼위일체의 신앙이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한다. 무한하신 하느님은 유일하시나, 고독하신 목석과 같은 분이 아니시며, 받아들이고 내어주시는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신 위격이시다. 그는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사랑이 넘쳐 그 사랑을 피조물에게 나누고자 하셨다.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너'라는 자와의 관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하느님과 남을 사랑하는 것이 최대의 계명이라는 것과 인간 인격의 최고 완성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날 모든 신자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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