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자와 초대받지 못한 자
“저를 미워하고 제 재산을 탐내는 이웃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가진 것들을 빼앗으려는 자들을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고 네 하인이 뒤를 좆으며 씨를 뿌릴 때 너는 씨앗 몇 알을 쪼아 먹는다고 해서 쟁기질을 멈추고 참새 한 마리를 쫓아버리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너는 풍요로운 추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사랑이란 초대받은 손님들에게는 상냥한 주인이지만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신기루나 희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설가들은 여러분이나 나보다 그저 조금 더 밝은 눈으로 삶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밝은 빛 속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네가 죄인들이라고 부른 나약한 사람들은 날개가 자라기도 전에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와 같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바위 위에 앉아 먹이 감이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와 같습니다. 마음이 나약한 사람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은 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길을 알고 있지만 가르쳐주지 않고, 모래와 바람 속에서 웃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 없는 자에게 자기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나는 믿고 이해하게 됩니다. 식탁에 앉으면 예수님은 함께 앉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기쁘게 먹고 마셨습니다.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또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과학과 종교는 완전히 일치하나, 과학과 신앙은 완전히 어긋납니다. 참된 종교인은 종교를 껴안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개구리와 황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구리는 황소만큼 커지기를 바라며. “나도 저렇게 큰 몸집이 돼봐야지.” 개구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배가 조금 불러진 개구리는 황소만큼 커보겠다며 계속해서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개구리의 배는 점점 크게 불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배가 터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힘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 늘 자기의 참된 본질과는 거리를 두는 자기소외를 일삼습니다. 그리고 경쟁하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론 힘이 있어 보이기 위해 괜한 허장성세도 부려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기 위한 조건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선물을 준비하거나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은 잔치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을 맞아 사랑의 결실을 결혼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초대받은 자와 초대받지 못한 자로 구분되어집니다. 친구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친구를 진심으로 대접하며 위하여 주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인정하여 친구라는 이름의 우정이 돈독하게 쌓여지게 됩니다. 친구에게 초대받기를 원하기보다는 먼저 친구를 초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놓으면 따스한 마음의 호감을 얻어 친구라는 이름으로 웃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조그마한 친구의 허물도 덮어주며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사이여야 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함께 수렁을 빠져나올 수 있는 동행하는 마음이어야 하고,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헤어지기보다는 같이하기 위해 찾아오는 자가 진정한 친구인 것입니다. 친구가 나의 손을 잡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친구의 따스한 손을 잡으며 믿음이라는 마음의 편지를 감촉으로 전해줄 때 친구도 우정이라는 거목으로 숨 쉬리라 생각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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