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당연히 해야 할 일 했을 뿐 ...

더 창공 2008. 11. 10. 14:54

당연히 해야 할 일 했을 뿐 ... 

 

 지난 2003년 7월 27일 영등포역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저를 너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부추기지 마세요. 어느 누구라도 저처럼 그 아이를 구했을 겁니다.”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한 뒤 자신의 두 발목은 절단됐던 역무원 김행균(42)씨는 27일 서울 신촌 연세병원에 누워 있었다. 발목 봉합 수술을 받은 뒤였다. 4인용 병실은 김 씨 외에 다른 환자 1명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고, 김 씨의 침대에는 ‘면회 사절, 절대 안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아이만 괜찮으면 된 거죠. 일부 매스컴에서는 그 아이 부모가 저를 찾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는데 그 부모 입장이 난처할 것 같아요. 저도 우리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면 아이가 어디서 어떤 장난을 치는지 모르는데…. 그 아이 부모도 그날 사건을 모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수술이 끝난 이후 그는 부인 배해순씨(39)에게 “그 아이가 우리 막내 보다 조금 컸던 것 같다.”며 “막내(초등학교 2년)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인 배씨는 ‘아이 엄마가 잘 챙겼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텐데’란 생각도 들었어요. 라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야간에 통증과 고열로 많이 괴로워했는데도, 오전 담당의사의 회진 때 ‘아프냐?’는 질문에 ‘아닙니다. 수술을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전날 밤새 병원에 함께 있었던 영등포역 동료 박계실씨는 “입원해서 자리를 비운 자신과 병문안 오는 동료들로 인해 혹시 역 업무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하고도 꿋꿋한 모습을 보이던 김 씨도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 채덕순(72)씨를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수원에 혼자 사는 어머니에게 숨겨 왔다. 평소 혈압이 높은 어머니가 혹시 이 사실을 알고 쓰러지실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요일을 맞아 가족, 친지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리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병원에 나타난 것이다. 어머니는 두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김 씨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매일 우리 자식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어쩌다 내 아들 다리가 이렇게 짧게 됐니!”라며 울부짖었다. 아들이 치료 받는 데 짐이 될까 봐 얼른 병실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다른 부모들처럼 아들에게 잘 해준 것도 없는데,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되다니….”라며 계속 울면서 가족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고 후 2분 여 동안은 의식이 살아있던 김행균씨가 동료 이균원씨에게 첫 마디로 “꼬마는 무사하냐.”고 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다 맛난 것이 생기면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감추어 두시고, 어쩌다 좋은 것이 생기면 자식들에게 주려고 고이고이 아껴두셨던 분들. 그렇게 키운 자식이 잘 되면 자신은 정작 해준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던 어머니들. 누가 물으면 의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던 아버지들. 그분들은 종처럼 일하면서도 기껍게 정성을 다하셨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오직 그것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보다 훨씬 잘살게 된 지금, 종처럼 사는 부모는 거의 없다. 요즘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살지만, 자신의 권리도 당당히 찾고 자기의 몫도 알아서 챙긴다. 부모로 서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맞갖은 보상을 요구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꼿꼿하고 당당한 사람들이 되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세가 종종 하느님 앞에서도 나올 때가 있다. 봉사한 만큼 축복을 받아야 하고 계명을 지킨 만큼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자. 자녀를 위해 행하는 헌신에 의해 부모도 부모다워지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로 인해 신앙인도 신앙인다워진다는 것을.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바로 그런 신앙인, 아니 ‘참인간’이 되는 것이거늘, 그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무슨 권리를 따로 주장할 것인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밖에 없다고 하거늘, 많이 베풀었다고 해서 누구에게 달리 보상을 받을 것인가? 그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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