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服從)
복종의 의미를 사전적 의미로 보면 명사로써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
입맞춤(친구)란 경의를 표하거나 사랑과 평화를 나누기 위해 입 맞추는 행위로써 성서기록에 의하면 얼굴, 손, 입에 입 맞추는 것은 창세기(27,26. 29,11) 1사무엘(20,41) 2사무엘(14,33) 루가복음(15,20) 아가페(1,1) 루가복음(7,45) 1사무엘(10,1) 등에 기록되어 잇고, 물건에 입 맞추는 행위는 "속죄, 회개, 기원, 경건의 의식"으로써 신전의 문지방이나 제단에 입 맞추고 하였습니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전례에서 사제가 미사를 시작할 때와 미사가 끝날 때에 제단에 입 맞추며 복음낭독 후에 복음서에 입 맞추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존경과 복종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교황님들이 외국을 방문 할 때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시어 가장먼저 하는 행동으로 땅에 입맞춤 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 또한 가장 큰 복종의 표시이며 행동으로 보이는 가장 근원적인 복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대소사를 앞에 놓고 부부사이의 의견이 갈리게 될 때 어떤 아내들은 남편에게 이번만은 자신의 의견을 따르라고 종용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5장 21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저번에는 자기가 남편의 의견에 순종했으니까 이번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해야 서로가 피차 복종하는 것이 되어 공평하다는 논리 입니다.
그러나 "피차 복종 하라"는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에서 말하는 삶의 원리를 실천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2절에 이어지는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은 이미 정해진 가정의 권위를 따라 아내가 자신의 머리인 남편에게 복종함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많은 부부들이 이 복종에 관한 하느님의 명령에 민감해지는 이유는 복종의 의미를 단순히 상대방을 지배한다는 세상적 가치관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은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자신이 아내의 머리로 부름 받았음을 아는 남편은 먼저 남편의 머리인 주님께 순종해야합니다. 이처럼 주님께 순종하는 남편은 아내를 위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처럼 아내를 위한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즉,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의 경제적 필요를 채우고 정서적으로 아내의 연약함을 격려와 사랑으로 채우면서 영적으로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아내와 주님과의 관계가 항상 밀접해질 수 있도록 온갖 배려와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지요.
머리의 역할은 다스림을 의미하지만 그 다스림은 폭군의 지배와는 다릅니다. 섬김과 희생을 통한 다스림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 같은 머리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의 삶이 기쁨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남편도 아내를 위한 희생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겠지요. 아내는 머리되는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남편은 머리되는 주님께 복종하면서 아내를 위한 희생의 삶을 사십시오.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따라 변치 않는 남편과 아내, 모두를 위한 일일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장궤) 자세는 존경과 통회를 의미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가 모셔진 감실을 지날 때나 성체축성, 성체현시, 거양성체 시에 무릎을 꿇는 것은 성체에 대한 합당한 존경의 표현이 되겠으며 사순절이나 참회 전례에서 자주 행하여지는 무릎 꿇음은 통회의 표현으로써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전함을 인정하는 행위로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복종< 한용운 >
남들은 자유를 사랑 한다지 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아 멘 - 2009년 6월30일
감상의 초점
한용운의 시는 진리에 대한 열렬한 구도심(求道心)과 조국애의 사랑이라는 두 가지 지향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사랑의 원리와 자유에 대한 투시(透視)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이별이 더 큰 만남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듯이, 자발적인 복종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설적 의미가 시의 주제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왜 나의 행복이라고 하는가를 파악하고, 아울러 당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를 역사적 상황과 관련지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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