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진정한 평화

더 창공 2009. 5. 11. 14:29

진정한 평화

 

진정한 평화란 두려움, 고통, 결핍감을 느끼지 않음으로써 모든 갈등과 욕구와 욕심,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따라서 평화란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상태가 평화로울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일제의 식민지 시절 일제에 부역하며 개인의 영달을 취했던 친일파들이 평화로운 마음이었을까요? 항거하며 순국한 독립투사들의 마음이 평화로웠을까요?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타협한 그 순간부터 평화란 없습니다. 양심이란 남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자신은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즐거움이나 여러 가지 심리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런 것들이 두려움이나 결핍감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육체적인 쾌락을 통해 얻어지는 생동감이나 심리적인 만족을 통해 얻어지는 좀 더 안전하고 완전한 자의식입니다. 불만족스럽거나 불충분한 상태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만족은 필연적으로 단명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만족이나 충족의 조건을 자꾸만 “지금 여기” 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상상의 지점에 갖다놓게 됩니다. 이런 것을 얻고 저런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그때가 되면 나는 만족할 것 이라는 생각은 무의식적인 마음이 미래의 어딘가에 구원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완성이고 평화이며 충만한 상태에 있는 생명 자체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며, 당신 안에서 대립이 없는 선(善), 그 자체 외에는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존재의 기쁨입니다. 잠깐 스치는 경험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그렇게 현존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당신 바깥이 아닌 당신 자신의 가장 깊은 본질로서의 신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당신 자신이 삼라만상의 근원이며, 시간과 형상을 초월한 하나의 생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두려움, 고통, 결핍감을 느끼지 않음으로써 모든 갈등과 욕구와 욕심,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그것은 편집증적인 생각과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심리적으로 필요로 하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 예수님은 당신이 주시는 평화와 세상이 주는 평화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어떤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는지 생각해봅시다. 진정한 평화의 조건은, 첫째로 불변성이고, 둘째는 자유로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평화롭기 위해 돈을 벌고, 평화롭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라는 것은 그 가치가 계속 변하고, 사업에 망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도둑이 들면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마는 무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면 항상 긴장되고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 번 돈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나 큰 자유를 희생해야 합니다. 건강이라는 것도 그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닌 것입니다. 흔히들 '다 먹자고 햐는 일이 아니냐?' 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심한 말로 우리가 '거시기' 만드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예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돈처럼 하루아침에 없어지거나, 값싼 연애의 풋사랑처럼 쉽게 변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변함없고,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보다 간절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며 마음과 정신과 혼을 다하여 사랑하며 세상의 제도와 권한들이 당신의 몸을 산산이 부수어도 저지할 수 없는 자유로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독해도, 고통스러워도, 오해받아도, 멸시받아도 평화로우셨고 십자가에 손발이 못 박혀 꼼짝할 수 없었어도 한없이 자유로우셨습니다. 우리도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됩니다.

이 세상 사물들 안에서는 결코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 어떤 피조물로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선으로써 하느님께서 홀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분만이 우리를 만족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와 쾌락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즐기기 위해서 또 그토록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쉬지 못하고 단 하루도 참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네 즐거움을 야훼에게서 찾아라.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시편37,4) 우리가 오직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다면 우리가 하느님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찾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건 내 삶을 사랑하고 나와 함께 그것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고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친 격랑 끝에 찾아오는 고요함과 용서 끝에 찾아오는 편안함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건'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 함께 공유했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가 최고의 평화입니다.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어떤 성현의 말씀처럼 건강은 분명히 인생의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다면 그 건강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젊어서는 죽어라고 일하여 건강을 다 해치고, 겨우 돈을 벌어서 자녀들 출가시키고 나면 병들어서, 남은 인생은 그 병을 고치려고 애쓰고 애쓰다 결국 세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느 수사님의 관상기도에서 “아무리 외모를 화려하게 꾸며도, 몸속에는 늘 똥이 있듯이, 아무리 즐겁고 행복해도, 마음속에는 늘 온갖 추한 것들이 잠복해 있다. 이 오물들을 확연히 볼 수 있어야 진정한 평화에 이른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꿈을 위해 싸운다면 가장 격심한 전투 중에도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벗들이 모두 희망을 잃는다 해도, 선한 싸움이 가져다주는 평화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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