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는 되지 말자
가라지 : 볏과의 한해살이풀. 줄기와 잎은 조와 비슷하고 이삭은 강아지풀과 비슷하다. 밭에서 자란다.
"천주교든 기독교든 아니면 정통교리를 가지는 어떤 종교라도 용서라는 가르침의 한계는 가해자만 감싸면서 피해자는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용서는 분노로 괴로워하는 개개인의 구원과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용서하고 회개하고 사랑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의 경중을 떠나 가해자의 사죄 혹은 사과도 없이 무작정 용서한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된다고 믿을 수도 없거니와 항상 해결책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느냐 안하느냐로 고민하는 선인들보다 용서받지 못하는 악인들이 편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착해 보인다.' 는 말은 '만만해 보인다.' ‘바보스럽다.’ 라는 말의 다른 표현아 아닐까요? 바로 쉽게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착해 보이는 부작용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처 주는 말과,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적으로 용서해 준다면, 어떤 나쁜 인간들은 그렇게 용서해 주는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덤벼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말 이것이 해결책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을 안겨준 사람들의 죄를 처벌 하기는 커녕 무조건적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라 하면 결국엔 악의는 반복되고 악의를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다는 슬픈 진리를 만드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라는 이데올로기의 한계인 것입니다. 미미하고 작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악의와 죄가 처벌받지 못하고 용서되기만 한다면 결국 그 죄는 무한 반복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는 종종 종교와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고 이야기된다. 2가지 모두 총체적 체계이며 진리 및 행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차이이다. 종교이론은 신적 질서에 따라 세워지며 이데올로기처럼 현실세계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않는다. 종교는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을 가지기 어려우며, 믿음, 예배를 강조하고 영성에 호소하며 인간정신의 구원, 정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데올로기는 집단, 민족, 계급을 향해 말하며, 계시에 의지하는 종교에 반해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있더라도 이성에만 의지한다고 믿는다.]
세상과 인간의 창조, 인간의 배신과 죄악, 구원과 종말로 이어지는 역사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다른 주장이 있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부터 세상의 종말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종말의 거대한 역사 중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2,000년이 지났지만 언제쯤에 종말이 도래하여 이 세상은 쇠가 녹듯이 없어질 것인가? 누구나 가지는 공통분모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2천년이 지난 역사 한 가운데에 살고 있지만, 초대 교회의 모습에서도 그들은 살아생전 세상 종말이 올 줄 알았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 앞에서 나타셨다가 주님의 승천 하시는 모습을 직접 바라본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아가며 그분과의 재림을 위해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 때 그날 즉 세상 종말이 언제 올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구원사업이 반드시 올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 그날은 주님께서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천년만년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가 오늘 밤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라지 같은 삶의 모습에서 탈피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십니다. 악의 세력이 가라지를 뿌린 탓입니다. 종말에는 그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궁금합니다. 누가 좋은 씨의 사람이고 누가 가라지의 모습을 지녔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평가를 위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의 분리대에서서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남기위해 나 자신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