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족보

더 창공 2009. 9. 7. 15:14

족보

 

사전적 의미로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을 족보라 합니다.

사실 예전엔 양반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계의 혈통이 족보라 하는 것에 기록 계승됨으로써 양반과 천민을 가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양반과 천민의 차이는 물질적으로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의 정도에 따라 매겨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우리나라의 역사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족보를 정리 해 보면, 본관 소속의 동족 전부를 망라한 종보, 조상의 계통 이외에 자기의 파만을 위주로 기재한 것을 파보, 자기의 직계만을 적은 가첩이 있으며, 특수한 족보로는 내시들의 계손을 밝힌 양계세보가 있습니다.

족보의 기원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현존하는 족보로는 명나라의 가정각본 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는 조선 초기에 한국의 족보 형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재 전해오는 족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문헌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성종 때인 1470년에 이루어진 안동 권씨 족보입니다. 그 후 족보는 본관 위주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증보문헌비고에 이씨의 본관은 365본, 김씨의 본관은 520본이라고 나타나 있어 각 씨족 중심의 족보 숫자가 엄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도 족보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족보는 조상의 계보를 밝히고 후손들 상호간의 관계를 알려준다는 좋은 측면도 있으나, 지나치게 문벌을 중시하고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악습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다 성씨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구의 절반 이상(약 54%)이 거대 성씨인 김씨, 박씨, 이씨, 정씨, 최씨라는 것입니다. 특히 경주 김씨의 구성원만 150여만 명이 넘어간다니... 신라 왕족의 후예가 이렇게 많을수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양반의 후예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안엔 다 족보가 있고, 몇 대조로 거슬러 올라가면 벼슬 한자리씩은 다 한‘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추켜세운다는 것입니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양반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3~4% 정도 밖에 안 되었고, 양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4대 내에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양반 자리에서 밀려나게 만드는 엄격한 통제조치도 있었건만,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이 이렇게 많아진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족보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이고이 모시고 있는 족보의 대부분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이후에 위조된 족보도 많지만, 18세기부터 쉴 새 없이 위조되어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합니다. 일부에서는 족보를 신성한 문서로까지 간주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뜻밖에도 사실과 다르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내용이 허다하게 발견되는 것이 바로 족보입니다. 허위 사실이 특히 많이 발견되는 것은 20세기에 발간된 족보들입니다.

17세기까지도 한국인 대다수는 족보에 입록되지 못하였으나,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은 족보 위조 없이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전하고 있는 16~17세기의 호적을 검토해보면, 그 당시에는 성씨를 사용하지 못한 노비들이 전체 인구의 30~40%나 되었고, 그보다 상위 계층이며 인구의 40~50%를 차지하던 평민들도 당시에는 족보와 거리가 아주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17세기까지 한국에서는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사실상 양반들이 독점하고 있었으며, 권력과 특권의 상징물인 족보 또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평민, 천민들은 호적에 신고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배우자의 아버지 등 이름을 모두 댈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노비들 가운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대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족보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양에서도 족보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려 합니다. 복음은 이 사실을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그런 결정이 있기까지 요셉은 고뇌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본인 스스로’ 떠날 결심을 했겠습니까? 작은 생각이 ‘큰 생각’을 이해하려면 힘이 듭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그렇게 해서 생겨납니다. 요셉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이끄심을 만나자, ‘하느님 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이후 그는 사람이 바뀝니다. 오해는 저절로 없어졌습니다. 은총의 철저한 개입이었습니다.

지금 이해할 수 없으면 한 번쯤은 ‘건너뛰어 봐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것이지요. 그것은 삶의 ‘닫힌 공간’을 여는 행동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노비는 없으며, 천한 사람의 후손을 자처하는 이들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양반이나 천민을 자로 갈라놓는 것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세상은 아닙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좋은 모습만을 닮아가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어 주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고 많은 사람들이 따를 수 있도록 내 삶을 바꾸어 나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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