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4

더 창공 2010. 3. 24. 09:51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4 (이중섭 신부)

   

아무리 하느님께 애걸하고 하느님과 타협해도 죽을병에서 도저히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을 때 환자는 극도로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진다.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가족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혹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우울해 한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환자를 더욱 절망과 우울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자기가 그동안 계획하고 꿈꾸던 일들을 다 포기해야 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환자가 이런 우울증의 단계에 오게 되면 사실 위로나 격려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놔두고 죽어야 하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이제는 좀 살 만해졌는데 죽어야 한다면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넷째 단계를 맞고 있는 환자는 이전과는 달리 말이 별로 없다. 그전에 비교해서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러므로 우울의 시기에 있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가장 우울한 시기를 맞고 있는 환자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심전심으로 환자와 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없이 그냥 옆에 있어 주거나, 손을 토닥거려 주거나 머리를 쓸어줌으로써 환자와 마음이 통할 수 있다.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 모르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임으로써 오히려 환자의 우울증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이때가 되면 환자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게 된다.

 

환자의 가족들과 사제들은 넷째 단계인 우울과 절망이 환자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단계를 거쳐야만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평온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초조와 우울의 단계를 무난히 거친 환자만이 죽음이라는 최종단계에 평안히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망의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모든 것을 체념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 앞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울과 절망이라는 네 번째 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환자 자신도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체념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위 사람들도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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