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2

더 창공 2010. 3. 23. 10:32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2 (이중섭 신부)

   

죽음이 임박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되면 사람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 아니야! 뭔가 잘못된 거야!"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 "그렇구나. 사실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른 반응을 보인다. 부정과 거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 다른 방어수단을 찾게 된다. 그것은 분노와 원망이다. "왜 하필이면 내가 죽어야 하나?"라고 묻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G박사(치과의사)가 바로 그런 예이다. "누구나 내 신세가 되면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왜 저 사람한테는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내가 어린아이였을 적부터 잘 알고 있던 노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어요. 여든 둘인가 되었을 겁니다. 흔히들 하는 말대로 이제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죠. 류마치스에다 다리를 절고 더럽고… 하여튼 마음 내키는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래서인지 '왜 나 대신 저 늙은이가 죽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이 거세게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제 1단계 부정과 거부의 단계와는 달리 둘째 단계인 분노와 원망의 단계는 가족과 의사들이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다. 분노와 원망이 시간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아무 데로나 닥치는 대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간호사들은 이러한 분노의 표적이 되기 쉽다. 가족이 찾아가도 환자는 반가워하지 않고 오히려 퉁명스럽게 행동한다. 이즈음에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불평스럽고 원망스러운 것뿐이다. TV를 봐도 화나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팔팔한 젊은 것들이 몸을 흔들어대며 춤을 추는 것이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런 놈들은 저렇게 세상을 즐기며 사는데 나는 왜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각하면 화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닥치는 대로 화를 내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환자를 포기한다. 사람을 너무 귀찮게 하고 또 어떻게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이런 환자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자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환자가 화를 내는 원인을 헤아려야 하고, 그 분노가 나 개인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환자가 화를 내는 대상에게 아무런 개인감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환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적고, 그러한 분노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이 적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환자의 처지를 헤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집을 다 짓고 막 입주하려다 그냥 남겨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면 한을 품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십 년 동안 뼈빠지게 모은 돈이 남의 손으로 들어간다면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믿음 > 교리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4  (0) 2010.03.24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3  (0) 2010.03.23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 1  (0) 2010.03.23
가톨릭은 왜 마리아를 공경하는가?  (0) 2010.03.17
고해성사의 길잡이  (0) 201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