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교부들의 마리아론 2

더 창공 2010. 7. 12. 11:04

교부들의 마리아론 2 (이중섭 신부)

 

니체아 공의회를 이끌었던 성 아타나시오(295-373년)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329-390년)는 그리스도께는 두 번의 탄생이 있다고 했다. 즉 성부로부터의 영원한 탄생과 시간 안에서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을 겪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성 에프렘(306-373년)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347-407년)는 좀 다른 측면에서 성모님을 바라보았다. 성 에프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거룩함과 영원한 동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성모님이 여느 신앙인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어두움을 이겨나가야 했음을 강조했다. 이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동방교부들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성모님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성모님을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묘사하였다. 성모님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였다.

   

4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처럼 성모 마리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여러 가지 이단이 발생했지만, 서방교회에서는 그런 이단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4세기에 서방교회에서는 성모님에 대한 새로운 주제가 하나 생겨났다. 그것은 성모님이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 + 397년)는 마리아가 교회의 모범이고 교회의 참된 모습이라고 하였다. 또한 성 암브로시오는 성모님의 완덕을 강조하면서 성모님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선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성모님에 대한 성 암브로시오의 이런 사상은 그 후 서방 교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성서에 해박했던 성 예로니모(347-419년)는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성서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예수님의 형제들'(마르 6,3 참조)을 예수님의 사촌들로 해석하였고, 성모님의 동정성이 예수님의 잉태 때문에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히뽀 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년)는 스승이었던 성 암브로시오를 따라 성모님을 모든 신자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뺄라지오와의 논쟁에서 성모님은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은 성모님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교회는 동정녀요 어머니로서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출산하기 때문에 교회는 성모님의 모습을 닮았다. 성모님은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탄생하는 데 협력하므로 교회의 어머니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