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교리상식

교부들의 마리아론 1

더 창공 2010. 7. 8. 16:12

교부들의 마리아론 1 (이중섭 신부)

   

초대 그리스도교계 저술가들이나 교부들은 성모님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다. 다만 성서를 해설하거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설명하면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성모 마리아가 언급되고 있다.

   

성모님의 동정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는 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이냐시오(35-110년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가현설(Docetismus)에 반대하여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을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나신 분"이라고 가르쳤다(7,2). 그리고 <스미르나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리아의 '동정성'(19,1)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이 표현은 후일 신앙고백 안에 들어왔다.

 

성 유스티노(100-165년경)는 2세기에 가장 뛰어난 호교 교부였다. 유명한 저서로서 <트리폰과의 대화>가 있는데 여기서 하와와 성모 마리아를 대조시켜 불순종과 순종을 설명한다(100,4-6). 하와는 사탄의 말을 들어 불순종의 죄를 범했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성 유스티노의 이런 사상은 성 이레네오(140-202년경)에게로 이어졌다.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이 이렇게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불신앙을 통하여 얽어 맨 매듭을 동정녀 마리아가 신앙을 통하여 풀었다." (이단을 거슬러 3,22,4). 이레네오는 성모님을 교회의 참된 모습으로 제시하고 성모님의 모성을 교회의 모성과 동일시하였다. 성모님과 교회의 밀접한 관련성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년경)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글레멘스는 교회를 성모님처럼 동정녀요 어머니로 생각하였다. 이상이 1세기에서 3세기까지 교부들의 마리아론이다.

   

그러면 그 후 4세기부터 5세기까지 즉니체아 공의회에서 칼체돈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칼체돈 공의회(451년)에 이르는 시기는 여러 가지 이단들이 생겨난 때였고 그러한 이단에 대처하여 교회가 답변을 시도하는 시기이다. 이때 4개의 큰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니체아 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페소 공의회(431년), 칼체돈 공의회(451년)가 그것이다. 이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 논쟁에는 성모 마리아의 신적인 모성도 함께 거론되었고 또 전례가 꼴을 갖추어 가면서 성모님의 축일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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