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빚과 빛

더 창공 2010. 12. 20. 21:50

빚과 빛

 

예수 성탄 대축일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마음이 자꾸만 설렙니다. 오실 주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사무쳐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아가’의 주인공들처럼,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처럼 주님과 그분의 어머니께 아름다운 찬미의 노래 한 자락 불러 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번 성탄에는 기쁨과 희망에 찬 환희의 노래를 마음 가득히 담아, 빛으로 오시는 그분과 그분의 어머니께 불러 드리는 찬미의 노래는 그분께 드리는 그 어떤 예물보다 아름다울 것입니다.

 

[아가 2,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빚은 빛이다 - 나희덕 -

 

아무도 따 가지 않은

꽃사과야,

너도 나처럼 빚 갚으며 살고 있구나

햇살과 바람에 붉은 살 도로 내주며

겨우내 시들어 가는 구나

 

월급타서 빚 갚고

퇴직금 타서 빚 갚고

그러고도 빚이 남아 있다는 게

오늘은 웬일인지 마음 놓인다.

 

빚고 오래 두고 갚다 보면

빛이 된다는 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건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걸

너는 알겠지,

사과가 되지 못한 꽃사과야

 

그러고도 못다 갚으면

제 마른 육신을 남겨두고 가면 되지

저기 좀 봐, 꽃사과야

하늘에 빚진 새가 날아가고 있어

언덕에 빚진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가고 있어.

 

이 세상에 살면서 빚지지 않으며 사는 인생이 또 있을까요. 오늘 저의 하루는 빚을 지며 산 '빚진 하루'였습니다. 밥을 먹으며 밥에게 빚을 졌고, 사과를 먹으며 사과에게 빚을 졌습니다.l 아내는 저를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이렇게 아내에게 빚을 진 덕으로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아갑니다. 저는 단 한순간도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빚진 존재'입니다. 저는 빚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에게 감히 빚 갚으라. 독촉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빚진 인생이 누구에게 빚을 갚으라. 감히 말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명을 '빚진 존재'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달팽이와 풀잎, 지렁이와 흙, 나무와 바람, 산과 강 , 해와 달, 그 어느 것 하나서로에게 빚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빚지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아주 작은 미생물에서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작은 돌멩이에서 밤하늘별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에게 빚을 지며 살아갑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아, 내가 누군가에게 빚진 존재로구나."하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빚진 인생이라면 또한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사랑, 내가 먹은 밥, 내가 받은 기쁨, 내가 받은 빚을 도로 갚으며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사랑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요, 아직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기에 더 아름답게 살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빚진 인생이라는 걸 알고 그 빚이 남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그에게는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는 거니까요. 이 빚은 두고두고 갚아야 하고, 조금씩 갚아야 하고, 마음으로 사랑으로 갚아야 하는 빚입니다.

시인은 마침내 노래합니다. 이제 빚은 빚이 아니라 빛이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진 빚은 모두 갚을 길이 없습니다. 마치 아무도 봐주지 않고 손길 주지 않는 꽃사과가 자기가 진 빚을 갚을 길 없어 '제 마른 육신을 남겨 두고 가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가 진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해 그렇게 제 육신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신 것입니다. 2010년 맞이하는 성탄절은 남 보다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진 빚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갚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우리 신자들의 도움 쁘레시디움 단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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