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어제와 오늘

더 창공 2006. 4. 27. 17:32
 

어제와 오늘

제가 태어난 것은 54.3.12.(음), 54.4.14 수요일(양) 충남 천원군 성환읍 수향리 292번지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4여중 4째 아들입니다. 성장과정에서 남매를 잃고 큰 형님은 4남매를 남겨놓고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4남 3녀가 있으며, 밑으로 남 녀 각 1명의 동생을 두고 있지요.

1983년 8월 15일 결혼을 앞두고 화양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그해 11월 21일  결혼을 했고 견진성사는 1986년 6월 8일 응암동 성당에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두 딸과 함께 네 식구가 예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항상 꽃밭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 전에는 무신론자 이었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다음의 성서 구절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입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태7.7-10)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려 하니 장모님께서 성당에서 영세를 하지 않으면 딸을 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때 학교 동창이면서 직장 동료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화양동 성당 교리 반으로 인도를 했지만 그래도 많은 반발이 있었지요. 그 당시 1982년 3월18일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인인 문부식·김은숙이 원주 교구의 함세웅 신부의 주선으로 4월1일 자수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 종결되는 듯 했으나 전두환 정권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천주교를 손볼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습니다. 천주교가 종교를 앞세워 좌경분자를 숨겨주고 불순활동을 방조했다는 것입니다. 어용 언론들은 교회도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라며 연일 공세에 가담했고, 사태는 이제 천주교와 정권의 전면전 양상으로 발전했었지요. 최기식 신부 구속으로 야기되었던 천주교와 정권과의 공방전은 이내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부와 천주교간의 마찰이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교리를 모르고 있던  나를 더 분노하게 했습니다. 나라가 있고 종교가 있는 것이지 종교가 있고 나라가 있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지금에서야 교리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삼선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입교를 결정을 하고 6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리를 받고 영세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제 과거사를 이야기 하니 무슨 영문인가 의아해 하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지나온 과거를 숨기고도 싶고 알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가난하고 참울했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까만 깡 보리밥에 고구마 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웠고 겨울에는 해가 일찍 지니까 일찍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면 한 끼를 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요. 그나마 밥을 먹고 뛰어 놀자하면 부모님은 배 꺼진다 “조용히 있어”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보리밥 고구마는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닭고기는 내가 정성들여 키웠던 닭이 있었는데 할머니 생신 때에 하필이면 그 닭을 잡아 버렸습니다. 그 닭을 잃고 2박 3일동인 머리를 싸고 괴로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해서 지금도 닭 비슷한 것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은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칠 줄 모르게 샘솟아 납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하느님을 섬기며 내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가족 사랑에는 미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 사랑에 조그만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아왔고 내가 겪은 그 고통이 컸었다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가장 강인하고 전투력이 강한 성모 마리아의 군대입니다. 일주일에 최소 2시간의 봉사 활동, 매일 까떼나 기도를 바치는 것 등 지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매월 첫 주 회합 때에 낭독하는 상훈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봉사를 하려고 레지오입단하여 정식 단원으로 성모님 앞에서 선서를 하였으면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의 봉사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봉사는 구분 되어져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나는 부족하다, 안된다, 라는 미온적인 태도에서 탈피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북에서  강조하는 전군의 간부화 그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고 받아들여야 할 작전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 해주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 주고 내가 그 입장이 돼서 생각을 해보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고쳐야 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살아 갈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가 봅니다.

저는 1993년 3월17일 정의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입단을 하여  1993년 6월 16일 선서를 하고 신자들의 도움과 병합을 2002년 2월 3일 병합을 하여 제가 단장을 맡은 지가 2개월여가 된듯합니다. 부족한 제가 단장직을 수락을 한 것은 우리 팀의 분위기도 그렇고 부족하지만 전 단원이 서로 협조하여 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 배당을 주고 배당을 받는 일 그래도 다른 쁘레시디움 보다는 잘 되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내허외실(內虛外實)의 모습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가 병원 봉사도 처음 시작 할 때 우려했던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그 밖의 작은 일에서부터 좋지 않은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아마도 단장의 능력 부재로 인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고 하는 것은 아니며, 제가 생각 하고 있는 만큼의 결과도 없고 실망스러움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 것인가? 단원들의 고견을 듣고 싶으며, 제가 단장을 그만 둠으로 해서 더욱 발전되는 신자들의 도움 쁘레시디움으로 자리 매김을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유능하고 정치를 잘 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 나라의 모습은? 가장이 돈을 많이 벌고 100평이 넘는 호화 주택에 산다고 하더라도 가족들의 사랑이 없이 가족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의 모습은? 수유동 본당 주임 신부님이 아무리 유식하고 지명도를 가진 목자라 해도 신자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성당의 모습은? 그 모두는 결코 아름다움을 찾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당의 이름을 걸고 레지오의 이름을 걸고 올바르지 못한 단원으로서의 행동이 성모님과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화목이 삶의 활력소이며 가정 성화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급 평의회에서도 “레지오 정신 실천” “가정 성화”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 하라는 기도 지향을 활동 배당으로 주고 있습니다.

제가 전자에 지난 일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난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지난 일들이 지금에 와서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라고 하겠지만 어제가 있어야 오늘이 있는 것이고 오늘이 있음에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어제보다 결코 내일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만 오늘이 있어 내일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왜냐하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 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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