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석가 탄신일

더 창공 2008. 6. 3. 16:27
 

석가 탄신일(부처님 오신 날)

  초파일이라고도 한다. 석가는 BC 563년 4월 8일(음력) 해 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 지방)의 왕 슈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한다.

  국제연합은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회의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탄신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년 음력 4월 8일(Buddha's Birthday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을 1975년 1월 15일부터 법정 공휴일로 공식화 되었으며, 연등축제가 부처님오신 날 전주(前週) 일요일 서울은 종로일대에서 성대히 열리고 있다. 현재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를 잡음으로서, 2008.5.4(일) 동대문운동장. 종로. 조계사 앞 우정국거리 등에서의 대대적인 거리 행사로 인해 교통마비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의 탄생일은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러나 이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왔다. 대체로 이날은 연등행사와 관등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하여진다.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 거북등, 오리등, 일월등, 학등, 배등, 연화등, 잉어등, 항아리등, 누각등, 가마등, 마, 화분등, 방울등, 만세등, 태평등,  병등, 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 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놀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의해서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춰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등 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에도 고려시대에는 관민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어지고 있다.

  불교에서의 가르침도 깨달음과 자비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8,17-19)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당장의 빵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멀리 볼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환기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열어 주지 않으시면 볼 수 없습니다. 기적을 환기시켜 주지 않으시면 걱정을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빵의 기적은 있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일들을 그분께서는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전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누룩이 되는 일입니다. 좋은 누룩이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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