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삼위일체 대축일

더 창공 2008. 6. 3. 16:27
 

삼위일체 대축일

  지난 주일은 삼위일체 대축일이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을 요약하면, 성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낳으시고 성부와 성자에게서 성령이 발하셨습니다. 즉 아드님은 지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낳음을 받지 않고 발하셨다는 것이 삼위의 관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위(位)로서는 각각이나 본체(本體)로서는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사랑으로 서로 완전히 일치됩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은 하느님 셋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여럿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이신 하느님께 세 위(位)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세 위의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워낙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이기 때문에 초대교회 때부터 많은 설명과 이론이 제시되었습니다.

  한편, 11세기의 성 안셀모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이런 비유로써 설명했습니다. “샘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샘에서부터 시작된 개울이 흐르고 흘러 호수를 이룹니다. 나일 강의 물줄기를 생각해 봅시다. 샘과 개울과 호수 이 셋은 서로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샘은 개울이 아니고 그렇다고 호수도 아닙니다. 호수 역시 개울이나 샘은 아닙니다. 나일이라는 이름에는 이 셋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샘을 생각하든, 개울을 생각하든, 아니면 호수를 생각하든 나일 강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한 물줄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한 이름이 세 가지를 의미하며, 세 이름이 단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은 구원역사를 통해 드러난 성부의 창조, 성자의 강생, 성령의 파견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들으려 무척 노력하였고 그 결과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질이 같은 한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다만 그러한 신비를 계시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하셨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시기 때문입니다.

 삼위 일체적인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우리 인간과는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창조해 주셨고, 성자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은총을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성부와 성령께로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은혜로운 성삼께 항상 감사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천주 성삼과 우리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우선 미사 시작 때 사제는 신자들에게 성삼의 이름으로 인사합니다. 즉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 "또한 사제와 함께." 하고 교우들은 응답하며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또 우리가 미사 때 외우는 "대영광송"도 창조주 하느님이신 성부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성자와 또 천주 성부의 영광 안에 함께 계신 성령을 찬미하며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광송"을 통해서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기도합니다. 또 우리는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에도 "성호경"을 외운다. 밥을 먹을 때, 기도할 때, 세례를 베풀 때, 고해 성사 때, 혼인 성사 때, 병자 성사 등 모든 교회 예식과 행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성삼의 이름으로 십자 성호를 긋고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각각 구별되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지만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사랑과 은총과 평화의 존재 양식을 묵상해 보면서 우리 인간들의 삶의 존재 방식도 그러한 일치의 삶을 본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고독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당신께서 함께 기쁨을 나누시기 위해 삼라만상을 내시고 우리를 그 사랑의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롭고 복되신 성삼위의 사랑을 깨닫고 장차 하느님의 생명에 한몫을 할 수 있도록 초청받은 복된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삼위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면서 '너'가 있음으로써 '나'가 존재함을 깨닫고, 너와 내가 함께 존재하는 우리들의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 하여야합니다. 또 언젠가는 우리도 영화롭고 복되신 하느님의 모습을 뵙게 될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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