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속과 겉

더 창공 2009. 10. 13. 12:53

속과 겉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가 11,39-41)

 

요즈음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세계가 긴장을 하고 손을 깨끗이 하자는 운동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100% 막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과연 식사 전에 손 씻는 것이 바리사이 인들에게는 율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손 씻는 것이 율법의 핵심은 아닐 것입니다.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먹는다고 영혼까지 정결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씻지 않으면 아무리 손을 씻고 또 씻는다 해도 그저 형식일 뿐입니다.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속은 변변치 못하면서 겉치레에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자주 쓰는 이야기지만 외허내실(外虛內實)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릇은 무엇인가 담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 그릇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물을 담고 있으면 물그릇이요, 밥을 담고 있으면 밥그릇입니다. 그릇 안에 쓰레기를 담고 있으면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꽃을 담고 있으면 꽃병이 됩니다.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으면 빈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라는 그릇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담아 주시려고 만드셨습니다. 그 성령을 담고 있어야만 성령그릇이 됩니다. 이 성령그릇을 깨끗이 닦고 보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귀한 가치를 알아보고 보존하는 것도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귀중한 것을 담는 일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그 담긴 내용물을 제대로 보관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일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는 항문이나 콧구멍을 생각하겠지만 가장 더럽고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은 발가락 사이라고 합니다. 어느 의사가 여러 개의 멸균 가제를 준비해서 손, 어깨, 가슴, 겨드랑, 사타구니, 항문, 발가락 등에 붙여두었다가 여덟 시간이 지난 다음 떼어서 세균을 세어보았더니 발가락에 있는 세균은 어깨와 겨드랑이 보다 무려 700배나 많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손을 씻어주신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셨는지 모릅니다. 가장 더러운 부분은 씻지 않고, 손만 씻으면 된다는 바리사이인들의 겉꾸밈을 질책하시는 예수님은 자선을 행하라는 말씀으로 겉과 속이 함께 아름답기를 바라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모두에게 심어주시고 만들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그 동안 사랑의 실천에 게을렀던 마음을 모두 버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제 주보에 게재된 말씀의 이삭 내용에 마음을 저리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성마틴 호스피스 병원에서“죽음을 가장 평화롭게 받아들인 분들은 어떤 삶을 사신 분들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내심‘남을 위해 평생 봉사한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누는 기쁨은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없는 은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원장님은, “불행하게도 남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런 죽음과 맞닥뜨리는데, 그건 아마도 준만큼 받으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 Give and give and…’ 다음에 이어지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또 당연히‘Give’라고 생각했지요. ‘끊임없이 주고 또 주어라…!’헌데 이어진 단어는‘Forget’이었습니다. ‘주고 또 주고 그리고…잊어라! ’이보다 지혜로운 조언이 있을까요? 또, 이보다 실천하기 힘든 말이 있을까요?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보기 부러워 할 정도의 여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일 듯하나

실제로는 마음이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에 조건을 알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은 만족을 모를 터이니

마음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몸이 추운 것은 옷으로 감쌀 수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사는 기준이 다 같을 수는 없지요.

 

행복에 조건이 하나일 수는 없답니다.

생긴 모양새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

가진 것이 적지만 행복을 아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

만남과 비교하지 않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행복에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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