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오감을 통한 행복이란?

더 창공 2009. 11. 30. 16:13

오감을 통한 행복이란?

 

(루가10,23-24)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뭔가 안 해본 일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웠다면, 적어도 그 순간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고, 힘들 때 살아온 과거를 되 집어 보면, 아 그때는 참 행복했구나 하고 느꼈던 때가 있고, 그때를 비추어 지금을 생각해보면 아 난 지금 행복하게 있는 거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성철스님의 말씀처럼 흑과 백의 단조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산은 물이고 물은 산입니다, 라는 말에 공감을 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산에 있는 스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하면서 기뻐할 수 있겠죠. 이런 말들은 굉장히 근사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니, 평생에 사랑하는 사랑 하는 이의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는 맹인일 것입니다. 아니지요.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또 말을 할 수 없으니 농아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통의 건강한 사람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니 행복 하다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극복한 주인공은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캘러 입니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파란 눈에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면서 한 살이 되어서 걸으면서 행복이 넘쳤었습니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지나는 겨울에 급성뇌염으로 눈의 초점을 잃으면서 보지도 못하고, 말을 배우던 아기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모는 헬렌의 눈과 귀가 되면서 훌륭하게 키우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래도 맛을 보며, 냄새를 맡으며, 물건을 만지는 촉감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명예 사랑 연애 이런 것들을 원합니다. 거의 사람들 모두가 소원들이 비슷비슷합니다. 사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면 풍요로움, 기쁨, 행복, 평온함, 이런 감정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면에서는 그런 감정들을 원하고 있지요. 나는 얼마든지 내면에 있는 것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내면이 원하는 것은 모두 나는 상상으로 나에게 모두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각화 심상화(마음속에 무언가를 그려내고 촉각 후각 청각 시각 미각을 모두 느낄 수 있다.)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나의 내면을 이미 다 가진 사람처럼 줄 수 있고, 나는 무엇이든 상상으로 만들어 내어 나의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지만, 같은 시간대에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 속에 다른 시간 안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사랑을, 운동을, 음악을, 식사를, 여행을.... 각자에게 맞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이들의 맘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습니다. 낚시를 가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낚시 가방을 싸거나, 운동을 해야만 건강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해야만 할 수 있다는 건 오랜 세월동안 반복되어진 나의 기억임을 알아야 합니다. 심상화 해야만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먼저 나는 누구인지 분명히 알기 위해 우리는 정화해야합니다. 정화는 내가 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열성을 다해 노력을 했다고 반복된 기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완벽하다는 사실을 인정 하려면 내안에 있는 완벽하지 못한 저런 기억들을 정화해야 합니다.

 

이 대림절을 지내면서 회개와 통회를 하여 참 나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 참 나의 힘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으며, 똑같은 힘이 너의 내면에서도 작용하고 있으며, 참 나의 의지를 통해서 숨이 너의 신체로 들어오고 나가고, 참 나의 의지 때문에 너의 생각이 다양한 대상으로 옮겨가며, 참 나의 의지 때문에 너는 말을 할 수 있고. 참나가 존재하기 때문에 너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참 나의 에너지가 맥박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이 깨어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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