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더 창공 2009. 12. 15. 12:00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마태오 (21,31-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오늘날 세상에는 두 계급의 사람들만이 살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에도 단지 두 계급의 사람으로 구별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율법을 범한 사람들과 그 율법을 순종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충성과 불충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장남은 가정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선두주자입니다. 장남이 집안을 일으키고 아우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베푸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동력이므로 장남이 필요한 것은 가정이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장남이 되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 분의 뜻에 따라 태어납니다. 조직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없고 리더가 되기 위한 욕망만 판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잔소리보다 형의 한마디가 더 강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남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장남으로 태어난 이들이 좋아 보였던 것은 아미도 어렸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형에겐 새 옷을 사주셨고, 그 동생들에게는 거의 대부분 형의 옷을 물려주었거든요. 성장하여 내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다보니 꼭 장남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명절날이나 제삿날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장남이나 차남의 역할을 그리 강요하거나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높게 여기며, 겸손하게 섬기며 배웁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내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성장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존경받고, 겸손한 자는 하느님께서 높여 주심으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와 모든 사람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사람이 주님의 커더란 은총을 받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링컨대통령은“내가 무언가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배울 용의가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진정 훌륭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사람입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많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당신이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귀를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약이 비록 입에는 쓰지만 병을 다스리고, 충언이 비록 귀에는 거슬리지만 몸에는 이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 듣기 좋은 소리도 있지만 책망하는 소리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혜자인가? 아니면 거만한 자인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광 스님의 말씀중에...

왜 앞길이 막히고 문제가 생기는가? 무명번뇌의 포로가 되고 독심과 아집의 노예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항상 무명을 걷어낸다. 위대한 선지식의 길은 무아의 길이요 버리고 비우는 길이다. 버리고 비우는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다. 내 것이란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모두 내 것 네 것을 따진다. 이 우주 가운데 나의 것은 없다. 잘 관리하다 가는 것, 열심히 버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다. 항상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나의 것이 없어 질 때 영원성을 띈 존재로 승화된다. 항상 내 것 네 것을 따지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무아가 어렵다. 나를 버리면 즐겁다. 마음속에 내가 없는 자가 장수한다. 기도하는 마음은 무아의 마음이요. 선행을 하는 것도 나와 남의 장벽을 허무는 마음이고, 그 마음 가운데 즐거움이 흘러들게 돼 있다. 하나가 되면 즐겁고 버리면 즐겁다. 우리가 웃으면 즐거워지는 이유 역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 비우는 삶

 

마음 비우기 전엔 몰랐던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을 비우고 이제 알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마음을 비운 만큼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 비우기 전에는

어떡하면 가득 채울까 욕심이 생겨나고

무엇이든 갖고 싶은 생각으로 넘쳐 나던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 비우고 빈 몸이 되고 보니

세상을 바로 보이는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빈 몸이 되기 전엔 허울 좋은 가식 덩어리가

가득 차서 넘쳐흘러 내리던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 비우기 전에는

세상사람 모두를 불신하고 믿지 않았는데

세상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는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 비우고 이제야 알고 보니

이렇게 쉬운걸 예전엔 몰랐습니다.

 

가질 거와 버릴 것을 알게 되니

희망찬 미래와 행복이 보이는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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