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육과 영

더 창공 2010. 1. 12. 11:19

육과 영

 

† 마르코(1,25-26)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마르코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영은 더러운 영 즉 마귀를 이야기 하고 있어 지금 제가 이야기 하려는 육과 영의 차원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 마귀도 잘못된 영의 길을 걷고 있기에 우리는 맑고 깨끗한 영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 되어 있고 그 마음이 집착하는 곳에 따라서 영이라 부르기도 하고 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늘의 가르침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할 수 있겠지요. 천륜과 인륜을 구분하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요. 천륜이란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 중 인간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천륜이라 하고 인륜이란 사람들이 정해 놓은 도덕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머턴 신부님의 “삶과 거룩함” 중에서 “영과 육”을 이렇게 표현 합니다.

육(肉)적인 것에는 욕정이나 방탕함뿐 아니라, 세속적인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며, 편견, 자기만족, 편협함, 집단적 오만함, 미신숭배, 야망 또는 탐욕의 논리를 따르면서 육(肉)을 숭배하는 것이 육적인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간들을 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영광을 쫓지 않고 우리 자신의 만족을 구하는 것이다. 반면 영(靈)은 우리를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이끈다. 영(靈)의 법은 겸손과 사랑의 법이다. 영(靈)은 우리의 진실한 자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는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이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靈)적인 존재가 되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육적인 것을 거부하고 우리의 선한 의도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육이 아닌 영을 따르라고.... 육이란 육체적인 삶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영의 법은 겸손과 사랑입니다. 영은 우리의 참 자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는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존재’가 되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며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교적인 덕은 이러한 내적인 일치에 뿌리를 두며, 우리의 자아는 영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바람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바람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세례와 신앙과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는 여전히 악한 무리들이 과거의 삶에서 기인하는 죽음의 씨앗과 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총은 그것이 자라는 것을 막아 주고, 우리가 이런 무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따르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은 우리의 악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선함을 의미합니다.

 

육은 흙의 세계를 상징하고, 영은 하늘의 세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육은 아담의 후손 즉, 죄를 짓고 멸망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고, 영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과 함께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냉정히 가르치셨습니다. 선지자들께서는 인간의 구원은 자신의 공로 여하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거북이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거북으로 거듭나야지 거북이 흉내를 낸다고 거북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말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영적인 몸과 육적인 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기에" 우리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이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불확실한 것이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 치중하고 죽음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의식하며 살면 훨씬 더 성실하게, 정직하게, 가볍게 그리고 기쁘게 현실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에서는 이렇게 기도 합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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