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따라 쟁이

더 창공 2010. 2. 16. 15:00

따라 쟁이

 

고유의 명절인 설이 엊그제이고 보면 유난하게 폭설과 강추위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만 했던 겨울도 시름시름 기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입춘을 지내고 봄의 왈츠가 아름답게 그 선율을 뽐내고 있으며, 남쪽에선 벌써 버들강아지가 눈을 부릅뜨고 달려온다는 소식이 있기도 합니다.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그래도 남아있는 질투의 화신들을 눈앞에 그리며 지금의 행복감에 취해 보지만, 항상 이맘때면 기대와 설렘이 우리들의 모든 것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어젠 장인어른의 영원한 안식처인 절두산 성당의 지하 방을 찾았습니다. 짧은 연도로 마음을 달래고 나오는 길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1주기 유품전이 2월 16일부터 5월 23일까지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자 박물관에서 상설 유품전이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벌써 그분의 열기가 식었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분의 크고 작은 감동에 힘입어 우리 천주교를 비롯해 온 세상이 많은 변화로 세상의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 가톨릭 신자라는 자부심에 더 할 나위 없이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도 함께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추위에 떨면서도 보통 3~4시간을 줄을 서서 분향하기만을 고대했던 시간들도 주마등처럼 지나감을 느껴보았습니다. 박물관에서는 착한 목자 도상이 있는 반지를 비롯해 김 추기경의 손때가 묻은 제의와 제구 등 유품 14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일기와 강의록, 유학시절 써내려간 용돈 기입장까지 김 추기경의 체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친필 자료들도 다수 공개된다 하니 시간을 내어 그분의 채취와 숨결을 느껴봄도 좋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김 추기경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려는 행사가 진행되어 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선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마르코 8,18)” 4천명을 먹이신 기적, 5천명을 먹이신 기적, 같은 사건을 다른 이의 눈으로 보고 해석 했다는 얘기와, 두 기적은 다른 의미의 기적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같은 사건 다른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은 사순시기가 시작 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우리가 1년 동안 고상 위에 성지가지를 모셔놓고 기도와 희생으로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 했습니다. 이 성지가지를 태운 재를 받는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는 발판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재의 예식과 더불어 단식과 금육제를 지켜야 하는 날이기도 하며, 우리가 그동안 나사가 풀려 어영부영 살았던 생활에서 예수님의 길을 보고 그 분의 삶을 통해 우리의 작은 희생으로라도 그분을 따라하는 따라쟁이가 되길 갈망 하고 계시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서 사순 시기는 왜 재의 수요일에 시작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일을 준비하는 시기는 "40일"의 기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활을 준비하는 이 40일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사순시기의 시작도 재의 수요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이 40일을 계산 할 때 성삼일(성금요일, 성토요일, 주일)로 부터 역산하여 사순시기의 시작이 주일이 사순 첫 주일이 되었었습니다.(7일x5주간+5일<금,목,수,화,월>=40일) 그런데 이 준비 기간 동안 재를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40일의 계산법이 달라졌습니다. 4세기 말에 로마에서는 일반적으로 3주간 동안 재를 지켰지만, 그 후에 사순시기 동안 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일을 빼고(주일은 재를 지키는 날에서 제외되기 때문) 옛 성삼일 전까지 34일간 재를 지켰습니다.(6일X5주간+4일<월,화,수,목>=34일). 그러나 옛 성삼일 중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사순시기 시행 이전부터 재를 지켜 왔으므로 여기에 2일을 가산하여 36일간 재를 지켰습니다. 그 후 6세기 초에 이르러 사람들은 40일 간 온전히 재를 지키기를 원하여 이미 시행했던 36일에다 4일(토,금,목,수)을 추가 하였고, 그러다 보니 사순시기의 시작이 주일에서 수요일로 바뀌어 오늘날 재의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매년 같은 전례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이 그저 요식 행위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올해 보다는 내년에는 조금씩 변해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상의 그늘진 곳에 희미하나마 작은 촛불로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단원들이 되어 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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