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고통이나 아픔의 크기가 죄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더 창공 2010. 3. 16. 17:12

고통이나 아픔의 크기가 죄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요한5,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일어나서 네 들것을 들고 가라 말씀 하신 것은 나의 모든 허물들 과오 병마 할 것 없이 나 자신의 악습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들어다 버리고 새 삶을 살기 위한 새 출발의 의미라고 새벽 미사 강론 때에 신부님이 말씀 하십니다.

 

사랑은 규칙보다 더 소중합니다. 모든 질서를 뛰어넘는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을 실천 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죄의 크기에 따라 고통의 크기가 비례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죄악과 불의가 판치고 정의가 퇴색해버려 침몰해가는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형법에는 형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금지 규정을 어겼을 때, 즉 죄를 지었을 때에는 처벌을 받는데 죄의 성격에 따라 처벌의 크기가 다릅니다. 살인처럼 무거운 죄를 지었을 때에는 무거운 형량이 뒤따르며 사소한 절도처럼 가벼운 죄를 지었을 때에는 가벼운 형량이 뒤따르게 됩니다.

 

도덕적인면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도덕적으로는 우선 금지된 것을 어떻게 어겼는지를 따집니다. 즉 죄를 지었는지를 따지고, 죄에 대한 양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즉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형량이라는 것도 비례해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크기는 피해자가 부당하게 입은 손실과 비례하게 됩니다. 살인죄가 가장 중대한 죄인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아예 종족번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강간죄가 매우 무거운 이유는 강간 피해자가 임신을 하여 낳은 자식이 제대로 크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살인행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강간 피해자가 낙태를 할 수 있으며, 여자 혼자서도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보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강간범이 콘돔을 사용한다면 임신할 확률도 매우 적습니다. 그렇다고 강간범이 콘돔을 사용했다고 해도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교회에서 성지 순례 중 버스가 낭떠러지에 굴러 사상자가 생긴다고 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면 죄를 많이 지어서라고 많은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죄의 경중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천재지변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여행 중 지진을 만나고 쓰나미에 휩쓸리는 대형 사고의 희생양이 된다 하여 그 장본인의 죄의 크기가 때문에 하늘로부터 천벌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순 5주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사순 5주를 지내고나면 성주간을 맞게 됩니다. 지난날의 죄악과 더러움의 자색 보자기는 벗어버리고 깨끗하고 고귀함을 자랑 하는 월계관을 쓰고 새로운 기쁨의 삶을 살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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