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훈화

평화

더 창공 2010. 5. 4. 10:59

평화

 

[요한.14,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사전 적의미로 평화란? - 평온하고 화목 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 (인류의 평화를 갈망하다.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다.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행복=기쁨은? -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 - (그 상태는 주관적일 수 있고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도 있다. 단, 행복은 철학적으로 아주 복잡하며 금욕을 행복으로 보기도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물에도 이에 상응하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 ※ 기쁨은? -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

자유란?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 또는 그런 상태. (자유를 누리다. 자유를 만끽하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다. 나에게도 말할 자유가 있다. 하루하루의 일과가 엄격한 규칙에 제약되어 있어서 완전히 행동의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다고 탄식하듯 했다.)

 

세상엔 무엇 무엇을 가장한 무엇 무엇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가장한 악마, 양의 탈을 쓴 늑대, 나눔을 가장한 약탈, 등등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류의 음과 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무도회라고 하는 행사에 참여함으로서 잠시나마 나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진실일겁니다. 코미디에서 “일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은 그보다 더 낳은 상태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이 현 자유 사회에서 일고 있는 자연 현상일 수밖에 없음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평화와 내 평화는 같은 맥락에서의 평화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의 미약한 지식으로선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미사에 신부님의 강론에서 로마의 평화를 말씀 하십니다. 기원전 1세기 말에 아우구스투스가 내란을 수습하고 제정을 수립한 때부터 약 200년간의 안정된 시기. 강대국 로마가 지배하여 군소국 간의 충돌을 없애고 치안을 확립하여 평화를 누리던 로마의 황금시대였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강한 군사력과 아집과 독선으로 짓누르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고요함이 진정한 평화의 낙원이라 선전을 하고도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평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아마 현재 우리 이웃인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도 이를 대변해 주는 것 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아마도 양파 껍질처럼 항상 같은 모양새와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의 평화와 기쁨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신앙으로서의 하느님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우리의 행동거지는 어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단순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조급증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 둘, 셋을 속으로 셀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봄이 어떨는지요? 그저 판단보다 행동이 앞서는 것을 방지 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급하게 처리하는 행동에서 불화의 싹이 트고 평화가 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하여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바라는 평화는 아닐 것입니다. 여유로움 속에 슬로우 운동에 참여함으로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배려하고 실천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주님께서 우리에게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오롯이 받을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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