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가능성 (이중섭 신부)
비록 성서가 명백하게 가르치고 교회의 가르침에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지옥은 그래도 역시 의아스럽다. 우리 인생의 최후 목적이 하느님인데, 하느님을 영원히 잃는 지옥이라는 모순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지옥교리는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 절대자 하느님을 모실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지옥교리는 인간이 본래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실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본성이라는 물살을 거꾸로 헤엄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있고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거부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목적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결정에 상관없이 천당에 가도록 일방적으로 결정하시지 않는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신다. 천당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시지 않는 것처럼 지옥도 일방적으로 결정하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옥이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모순이다.
대죄를 범해도 회개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포기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지옥은 일평생 하느님을 거부하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배척하면서 살아온 상태가 폭로되는 곳이다. 인간은 하느님이 자기의 최후 목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느님을 거부할 수 있는데 이런 분열상태가 곧 지옥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 상태를 자유롭게 원해서 일평생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벌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택하여 만든 벌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이런 모순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최후 목적은 하느님인데, 하느님과 영원히 등지고 영원히 벌을 받는 지옥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옥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은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천당을 선택하듯이 인간은 스스로 지옥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도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공연히 지옥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괴롭히시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지옥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할 최악의 사태이다. 지옥교리는 결코 위협이나 경고가 아니다. 하느님으로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할 최악의 위기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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