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공감

노는 시간

더 창공 2009. 12. 28. 11:07

노는 시간 - 도종환 -

 

시인 신경림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방송국에서 온 사람이 물었답니다.

"선생님은 평소에 독서하고 사색하고 그러십니까?"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손자가

대뜸 먼저 대답을 하였답니다.

 

"우리 할아버지 드러누워서 텔레비전 봐요."

손자의 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름 높은 시인도

집에선 빈둥거리며 텔레비전만 보는

한가한 할아버지로 보였던가 봅니다.

 

 

사도 요한 역시 기르던 참새와 놀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사냥꾼이 찾아와 그토록 이름난 사람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그 시간에 틀림없이 무엇인가 유익하고

중요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시간을 놀이로 허비하십니까?

왜 그런 쓸모없는 참새와 시간을 보내십니까?"

 

요한은 놀란 눈으로 사냥꾼을 바라보았습니다.

놀이를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왜 저 사냥꾼은 깨닫지 못하는 걸까?

 

이윽고 사도 요한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활줄을 팽팽하게 죄어놓지 않는가?"

 

"활줄을 죄어놓기만 하면 활이 탄력을 잃어버려

화살을 쏠 수 없기 때문에 풀어놓는답니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이 젊은 사냥꾼에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그대가 활줄의 팽팽한 압력을 풀어놓듯이

그대 내면에서 일어나는 긴장감도 풀고 쉬어야 한다네.

만일 내가 이렇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힘이 없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걸세."

 

프랭크 미할릭이 엮은 『느낌이 있는 이야기』에 나오는

브루노 하그스피엘의 글입니다.

살면서 때로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쉬면서 팽팽하게 당겨놓은 긴장의 끈도 풀어놓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들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고,

다시 마음을 집중해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게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건 참새와 노는 일이건

이완과 휴식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볼 때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긴장의 끈을 놓고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빈둥거리면 좀 어떻습니까?

 

하루에도 몇 시간 쯤, 또는 일주일에 며칠쯤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어야 합니다.

 

놀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놀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요즘은 아이고 어른이고 놀 시간이 없습니다.

직장인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퇴근시간도 없이 일합니다.

 

정해진 근무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도

새벽 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하여 학원을 다니면서

따로 더 배우는가 하면,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쓰며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들에게 노는 건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모습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려서 많이 듣던 말 중에

"너 지금 놀고 있니?"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지금도 뜨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자들은 놀 줄을 모릅니다.

특히 함께 어울려 놀 줄 모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 합니다.

어려서부터 잘 놀 줄 알아야 사회성도 좋고

남과의 관계도 잘 풀어나갑니다.

 

활줄을 늘 당겨놓기만 하면 활은 망가지고 맙니다.

당겨놓아야 할 때가 있고,

풀어놓아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일수록 활을 자주 풀어놓습니다.

풀어놓는 것 자체가 활을 아끼고

오래 오래 사용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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