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묵상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

더 창공 2010. 3. 8. 11:31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 - 이 수철 신부님

 

- 2010.3.6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안주와 타성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께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회개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예언자 미카가 말한 자비하신 하느님의 진면목이 오늘 복음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화답송 후렴 말씀처럼, 하느님은 자애로우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닮아 자애롭고 너그럽다면 세상에 풀리지 않을 문제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 역시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막연한 인간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로서 인간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정의되지도, 규정되지도 않습니다.

‘인간답게’는 막연한 추상이지만

‘아버지의 자녀답게’는 구체적이요 실제적인 인간상입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이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평생과제이자 목표입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자녀가 되어 사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 복음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큰 아들,

실제로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종처럼 살았습니다.

가장 아버지에 가까이 있었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자유로운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종으로 살았음을 자인합니다.

아우에게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참으로 몰인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하나 뿐인 아우에게 ‘저 아들’이라 하며 거리를 둡니다.

두 형제들의 마음의 거리가 참 멀게 느껴집니다. 이 역시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가까이 사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큰 경종이 됩니다.

아버지를 떠난 자유는 순전히 환상입니다.

결과는 세상의 종이요 아들로서의 품위 상실입니다.

오늘 세상 자유를 추구하여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

‘왕자’의 품위에서 ‘거지’로 전락입니다.

 

오늘날 아버지를 떠나 냉담으로 세상의 종 되어

영적 거지처럼 사는 작은 아들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우리는 큰 아들입니까 혹은 작은 아들입니까?

큰 아들, 작은 아들 모두가 회개의 대상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살 때

자유인의 구원입니다.

자비와 거룩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비로운 사람이 바로 거룩한 사람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회개를 통해 자녀로서의 품위를 회복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회개한 작은 아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거지에서

왕자로 품위를 회복하는 감동적인 다음 장면입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거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이어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당신 자비를 확인시키며

당신의 기쁨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강요하는 사랑이 아닌 호소하는 사랑, 바로 이게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분명 큰 아들은 아버지의 호소 말씀에 회개하여

작은 아들의 생환을 위해 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회개한 큰 아들이자 작은 아들들인

우리 모두를 위해 미사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시고

자애를 베푸시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