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 참 좋았다.
나름대로는 길었을 수도 짧았을 수도 있었던 설 연휴 잘 지내셨지요? 고유의 대 명절에 가지는 여유와 기쁨과 풍요가 항상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복은 남이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만들어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사말에도 “새해 복 많이 드립니다.” 가 아니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지요. 이 말은 내가 남에게 얼마만큼의 정해진 복을 확실하게 줄 수 없다는 슬픈 사연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은 누군가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 받아 쌓아야 한다는 것이며 복은 나에게 주어진 복을 남에게 나누어 줄 때 나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더 많은 복이 쌓여진다고 하니 우리 모두가 나의 복을 차지하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복을 서로 같이 나누려고 노력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인간들의 보기 좋은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1,20ㅡ23]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한민족 고유의 명절 설이 지나고 엿새째 날입니다. 매일미사의 독서와 우리가 맞는 새해가 동일선상에 위치하며 나란히 가고 있음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천지 창조에 동참하고 있음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하니, 우리들은 참 행운아들입니다. 다시 한 번 새해에는 지나오면서 부족하고 못 다한 모든 일들이 완성의 기쁨을 맛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고 나서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보니 참 좋았다”라고 우리도 똑같은 말을 하면서 축배의 잔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한 오늘복음에서는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온전히 하느님께만 매달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겠지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짐 없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잘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 즉 거기까지가 내가 가지는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장기판에서 양수 겹장이면 패배의 잔을 마셔야지요. 그러나 진퇴양란에서 허덕이며 멍군 하며 빠져 나갈 수 없다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두 손 두 발을 들고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요. 분명한 것은 좀 더 슬기롭게 여유를 가지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멍군이라 크게 외치며 그 진구렁에서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온 마음으로 그분께 청하면 반드시 구원의 손길이 우릴 잡아 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며 부모님에게도 효도 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그 분께서 마련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부족 하지만 항상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보다는 오늘에 최선을 다 하는 혹 내일을 준비한다면 오직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감은 힘들까요? 나이 들어 갈수록 더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 때문에 자식도 친구도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며 오로지 본인의 삼욕만을 채우기 급급하다고 합니다.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작은 마음이 정작 그 상황에 이르면 전혀 소용이 없다합니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랫사람이 인사를 하면 절대로 앉아서 받지 않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아랫사람들에게 사랑의 교훈을 실천 할 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 멘 -
2011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