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묵상

얼굴 없는 나

더 창공 2011. 2. 19. 11:20

얼굴 없는 나

 

나는 어느 성씨에 어느 자손 몇 대 손입니다. 라는 말들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볼라치면 요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고 얼굴도 없는 몸뚱이만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복잡한 지하철에 노약자가 앉아 있는 내 앞에 서기라도 하면 “저xx 하필이면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자기들의 자리인 보호석으로 가서 있을 것이지” 라고 하면서 오지도 않는 잠을 자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그 시선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꿩은 머리만 풀에 감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포수에게 쫓기던 꿩이 급한 마음에 머리만 낙엽 속에 처박고 내가 안 보이니 아마 포수도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란 혼자만의 아둔한 생각입니다. 흔히 일부만 숨기고 전체를 숨길 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유한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것 정도는 괜찮겠지. 내가 하는 이 일들을 아무도 모를 거야.” 라며 서슴없이 자신에게는 대단히 관대해지고, 차마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꿩이 머리만 감춘다고 자신의 몸통까지 감춰진 것일까요? 자신이 머리를 감추고 눈을 감고 있으니 바깥 세계를 못 보는 것일 뿐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머리만 숨기고 몸통을 드러낸 꿩을 보며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요? 그러나 그 꿩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많음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김수한 추기경의 선종이 2주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분의 숭고한 뜻과 사랑의 실천이 그립다고들 합니다. 저도 “바보 추기경”연극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반짝하며 으레 관례로만 받아들이고 넘길 것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그분이 지금 까지 살아 계신다면 김수환 추기경을 어찌 생각을 할까요? 아마 그분은 지금 많은 고통가운데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란 또는 나이도 많이 드셨으니 고생 덜 하시고 그저 평온한 가운데 하느님 곁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뿐일 겁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한 죽음이 있었기에 젊었을 때부터 실천해 온 작은 사랑의 실천, 올곧음, 부정이나 타락의 굴레 안에서도 진리를 앞세운 반듯한 사제로서의 모범 등등이 추기경님의 죽음과 함께 부활을 한 것입니다. 이 태석(사도요한)신부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죽음이라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해 살고 계시지만 아마 그분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아마 수단이라는 나라에 톤즈라는 마을이 있었는지 또 이 태석(사도요한)신부가 세상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통해 그토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사랑 실천 나나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보다는 더 아프고 외로운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21세기의 작은 예수님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이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종교 종파를 넘어서서 동서양과 인종을 초월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하늘나라에서도 지금 꼭 필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서 그분들이 못 다한 사랑 실천을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도록 과제로 남겨 주는 것이겠지요. 우리 모두의 삶은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서 공존을 하고 있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이나 이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어떠한 화려한 삶이 되었던 아무도 모르게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차도 모르는 삶이 되었든 모두 다 똑같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되돌이표 안에는 너무나 많은 뜻이 담겨져 있고 죽음을 통해 그 죽음전의 삶을 재조명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우리들에게 베풀었던 작은 사랑의 실천 또는 작은 희생이 백 배 아니 백만 배 확대 되어져 우리들에게 표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리 속에 죽기 전 까지는 잊혀지지 않을 대 사간으로 남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공경하고 그리워하며 그분처럼 살아가길 원하는 것은 그분이 지금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2000년 전에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다음에 그분의 삶을 재조명 해 볼 때 그분의 사랑의 실천과 인류 구원의 참뜻이 죽음과 함께 부활했다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내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 전체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상기 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인기 좋은 유명 배우, 또는 탤런트, 유명 가수, 전보다는 후에 가지는 아름다음을 가지고 자랑삼는 이들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얼굴 없는 마네킹이 좋아 보이십니까?

이내 작은 얼굴 조상으로부터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못난 얼굴이지만 그래도 족보 있는 자연미 넘치는 얼굴들 아닙니까? 자랑삼아 미소 띤 얼굴로 세상과 마주 하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그분과 함께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우리는 행복할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빈부의 차이가 심한 선진국 국민들 보다는 빈부의 차이가 없는 오지의 작은 나라의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작은 행복과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 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 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 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믿음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기도  (0) 2011.03.22
제 14장 쁘레시디움  (0) 2011.03.07
사랑이란 기쁨의 쉼터   (0) 2010.10.01
동정은 사랑의 시초   (0) 2010.08.11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맑고 밝다   (0) 2010.07.26